송산면 당산리(구 오도리)에 위치한 소금창고
송산면 당산리(구 오도리)에 위치한 소금창고

송산면 당산리(구 오도리). 푸르른 풀과 논밭이 넓게 펼쳐진 평야 한쪽에 낡은 창고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얼핏 보면 오래된 농촌 창고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는 당진의 근현대사와 지역 주민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금창고’로 불리는 이 건물은 지금은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과거에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었던 ‘오섬(오도)’에 자리했던 공간이다.

1930년 오도항 사진 속 소금창고가 있다.
1930년 오도항 사진 속 소금창고가 있다.

배가 드나들던 ‘오섬’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됐지만, 과거 오섬에는 제법 규모 있는 항구가 있었고 인천으로 향하는 여객선이 오가며 당진의 관문 역할을 했다. 주민들이 배를 타고 인천을 오가고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던 곳이었다고. 당시 항구가 있을 때는 읍내보다 더 번화한 곳이었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객선 운항이 줄어들고 1995년 석문방조제 준공 등으로 주변 환경이 크게 달라지면서 오섬의 모습도 변했다. 바다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마을은 어느새 논과 밭이 펼쳐진 농촌마을로 바뀌었고, 과거 포구의 흔적도 대부분 사라졌다.

그런 오섬의 옛 모습을 증명하듯 남아 있는 건물이 바로 소금창고다.

당진 지역에 현존하는 근대 창고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무렵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당진 일대에서 생산된 곡식과 주변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 등을 보관하고 운반하기위한 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당진에서 인천 등 수도권으로 향하는 물자와 사람들이 오가던 오섬의 역사와 맞물려 지역의 산업과 교통 변화를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래된 창고에 새로운 쓰임 더해

마을이 변하면서 점차 잊혀 가던 오래된 창고에 새로운 쓰임을 더한 사람은 아미미술관 박기호 관장이다.

박 관장은 어린 시절 소풍으로 찾았던 오도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방문했다가 어릴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창고를 발견했다. 당시 비어 있던 창고 문을 열어본 그는 내부에 소나무를 활용한 해링본 형태의 골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감격했다고 한다.

평소 정말 갖고 싶어 하던 형태의 멋진 창고였던 만큼 박 관장은 수소문 끝에 주인을 찾아가 2019년 창고를 인수했다. 이후 공간을 직접 가꾸며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색색의 양철판 덧댄 외벽

박 관장이 매료된 것처럼 소금창고의 가치는 건물의 역사뿐 아니라 독특한 건축 구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건물 내부에는 트러스 구조를 비롯한 목조 구조체가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특히 목재를 비스듬히 교차해 배치한 해링본(Herringbone) 방식의 구조가 특징적이다. 규격화된 자재 대신 주변에서 구할 수 있었던 굴곡진 소나무를 활용해 만들어진 구조는 오래된 창고의 원형과 독특한 공간감을 보여준다.

외관도 박 관장의 손길을 거쳐 새롭게 태어났다. 박 관장은 당진곳곳에서 낡은 집이 철거되거나 지붕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양철 지붕을 오랜 시간 수집했다. 그렇게 모은 각양각색의 양철판을 창고 외벽과 지붕에 이어 붙여 지금의 독특한 모습을 완성했다.

서로 다른 색의 양철판이 이어진 외관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2022년 소금창에에서 에꼴 드 아미 레지던시에 참여해 작업하고 있는 정희기 작가
2022년 소금창에에서 에꼴 드 아미 레지던시에 참여해 작업하고 있는 정희기 작가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박 관장은 소금창고를 개인 작업실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실제로 지난 2021년과 2022년에는 ‘에꼴 드 아미 레지던시’가 이곳에서 진행됐다. 당시 류소리, 박용화, 안경진, 이예은, 정지연 작가 등이 참여해 ‘당진의 포구’를 주제로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포구를 작품에 담았다.

과거 사람들이 오가던 포구였던 공간이 이제는 예술가들이 지역의 역사를 탐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작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또한 다이닝, 전시, 투어, 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최근에는 프로그램이 운영되지 않았지만 박 관장은 앞으로 이 공간을 지역의 이름을 딴 아트테인먼트 오도(Artainment ODO) 프로젝트를 통해 전시, 공연, 패션쇼, 아트페어, 작품 경매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결합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전했다.

소금창고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 박기호 관장
소금창고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 박기호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