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면 장항2리에는 고대면의 교육 발전과 학구열을 이끌어온 교육자 손 인권 옹이 살고 있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단 한순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는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고 노인대학을 설립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248명 제치고 수석 입학
손인권 옹은 1933년 일제강점기에 가난한 소작농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에게는 두 살씩 터울을 둔 네명의 동생이 있었으며 아홉살 되던 해 막내 동생을 출산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를 도와 가정을 이끌었다. 손인권 옹은 아버지의 권유와 배움에 대한 의지로 1942년 석문초등학교에 입학했으며 매 시험 만점을 맞고 반장을 맡는 등 학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학업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입학금을 내려면 논을 세네 말이나 팔아야 했다”며 당시 필요한 입학금이 가정에 큰 부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손인권 옹의 재능을 눈여겨본 학부형회장이 “석문면에 아까운 인재를 이렇게 놓칠 수 없다”며 학부형들과 함께 돈을 모아 입학금을 마련해줬다. 덕분에 중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한 그는 248명의 응시자 가운데 수석으로 합격하며 입학금 전액을 면제받았다.
“의용군 끌려가 목숨 건 탈출”
그는 중학교 3년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3학년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럼에도 공부를 포기할 수 없었던 손인권 옹은 면천면 몽산에 있던 작은 절에 들어가 학업을 이어갔다. 손인권 옹은“스님과 함께 방을 쓰면서 사법고시를 목표로 전쟁 중에도 계속 공부했다” 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학업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학교 교사가 “북한의 김일성대학에 가야 성공한다”며 손인권 옹을 북한 의용군으로 보낸 것이다. 그곳에서 몸이 쇠약해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같은 의용군이던 친구와 함께 몰래 탈출했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에 몇 차례 붙잡혀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어린 학생이라는 이유로 풀려나기도 했다. 손인권 옹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 추석날 순성면까지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평생 잊지 못할 귀인”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1951년 당진정보고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다. 집에서 입학금을 겨우 마련해줘 들어갈 수 있었지만 학비를 계속 마련하기 위해서는 고학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손인권 옹은 “방학 때는 학용품이나 비누 같은 작은 생필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팔았다”며 “생활고로 인해 공부는 뒷전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희망하던 인천사범대 연수과 입학을 준비하며 중학교 친구의 공부를 도왔고 그 결과 두 사람은 나란히 합격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발목을 잡는 건 돈이었다. 손인권 옹의 아버지가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유하고 있던 논까지 팔았으나 대학교 등록금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아버지가 손인권 옹의 어려운 형편과 자신의 아들이 그의 도움으로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손인권 옹의 등록금까지 내줬다. 손인권 옹은 “중학교 진학 때 입학금을 마련해준 학부형회장(홍웅현)과 대학교 등록금을 대신 내준 친구 아버지(노춘택)는 “내 인생에 가장 감사한 평생의 은인들”이라고 말했다.
“전국서 찾아오는 학교 만들어”
첫 발령지인 평택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손인권 옹은 1963년 아버지가 계신 당진으로 내려왔다. 이후 44세에 교감 시험에 응시해 3등으로 합격한 뒤에는 고대초등학교에서 11년간 교감으로 근무했다. 1994년에는 고산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열린교육을 도입했다. 그는 “전국에서 열린교육을 성공한 학교가 딱 세 곳뿐이었는데 고산초등학교가 그중 하나였다”며 “우리 학교의 성공 사례를 보기 위해 전국 127개 학교가 방문했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른 뒤 정년퇴직 연령이 단축되면서 손인권 옹은 1999년 8월 31일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게 했다.

고대면민이 직접 기록한 역사
퇴임 후에도 손인권 옹의 활동은 이어졌다. 그는 “심대평 전 충청남도지사가 지역 뿌리찾기 운동을 추진하면서 2000년부터 고대면의 역사를 담은 면지 편찬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면장이었던 이은홍 씨와 함께 편찬위원회를 조직하고 집필위원을 선정하는 등 편찬을 위한 조직 구성부터 직접 맡았다. 이후 외부 학자의 도움 없이 면민들로 구성된 편찬위원들이 세세한 지역의 역사를 담아 면지를 완성했다.
2010년에는 당진시 고대노인대학을 설립해 초대 학장을 맡았으며 7년 간 운영을 이끌었다. 그는 “그때만 해도 합덕읍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는 노인대학이 있었지만 고대면에는 없어 직접 만들었다”고 말했다. 노인대학을 교회에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특정 교인만 이용하는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당시 고대면사무소 3층에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80여 명의 학생을 예상했지만 150명이 넘는 주민이 참여하면서 두 반으로 나눠 격주로 운영했다. 이후 학생 수는 220명까지 늘었다. 또한 그는 노인대학 학생들의 삶과 활동, 앞으로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세 권 펴내며 고대노인대학의 역사를 기록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손인권 옹의 공로는 2012년 당진군이 시로 승격될 때 제1호 당진시민대상을 받으며 인정됐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94세가 된 손인권 옹은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배우고 배려하며 살아가길 당부했다.
“나라가 혼란스럽고 정치나 이념적 갈등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해외 여러 곳을 돌아보고 나니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더라고요. 시대가 하루하루 다르게 변화하는 만큼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살았으면 합니다.”

한편 손인권 옹은 충남콘텐츠연구소 지음협동조합이 주관하는 고대면 세대공감 프로젝트 ‘있는 고대로 칭찬 합시다!’ 3편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장항2리 칭찬왕으로 소개됐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