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는 단어가 ‘돈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했다는 민간 어원설은 참으로 명쾌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돈은 활발히 도는 순간에 비로소 자기 기능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26년 오늘, 우리 사회의 돈은 과연 잘 돌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50대 중반인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70~80년대는 부유하진 않았지만 희망이 넘치던 시대였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집과 차를 마련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번듯한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소시지 반찬 하나를 두고 6형제가 젓가락 경쟁을 벌이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살아있었습니다.

오늘날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직장에서는 일감이 줄고 소상공인은 연이어 문을 닫습니다. 아동·청소년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신할 미래 앞에서 무작정 학원을 순회하며 암기식 교육에 내몰리고, 청년들은 급격히 줄어드는 일자리 구조 속에 꿈을 접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세계 200여 개국 중 명목 GDP 10~15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올해는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세계 수출 순위 5위라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럼에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싸늘하기만 합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돈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제대로 돌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지표가 이를 증명합니다. 2016년 이후 임금 노동자의 소득은 줄곧 제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올해 1분기 반도체 호황으로 전기 대비 경제 실질 국민총소득(GNI)이 9.2% 증가했으나, 실질 가계처분가능소득은 0.3% 증가에 그쳤습니다. 반면 실질 기업소득은 16.0% 늘어난 데 비해 실질 노동자 보수 증가는 3.1%에 불과했습니다. 수출이 6.0% 성장할 때 가계소비가 0.6% 증가에 그친 현상은 거시적 성장의 결실이 가계로 흘러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서민들은 복잡한 통계 없이도 삶으로 이를 체감합니다. 일부 대기업의 억대 성과급 잔치는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이며, 거시경제 호황이 도리어 물가와 집값 상승을 자극해 생계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참담한 현실 속에서 최근 당진시의회의 ‘경제회복지원금(민생지원금) 조례안’ 부결 소식은 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허탈감을 남겼습니다. 심지어 지난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오성환 시장 후보의 공약이었음에도, 시의회 여야 7 대 7 구도 속에서 부결되었습니다.

부결 사유로 제시된 ‘재정 부담’, ‘효과성 논란’, ‘재원 조달 및 소통 부재’는 늘 반복되어 온 상투적인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은 시민이 납부한 세금이며, 그 세금은 시민이 가장 힘들 때 쓰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진시의 1년 예산은 약 1조 5,000억 원 규모입니다. 이번 민생지원금 예산 530억 원은 전체 예산의 약 3.5% 수준입니다. 우리 국민은 소득세, 지방세, 부가가치세 등 매월 평균 40만 원 안팎의 세금을 냅니다. 납세는 시민의 일방적인 의무가 아닙니다. 시민이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만큼, 위기 시 재정의 보호를 받는 것 또한 주권자의 당연하고 당당한 권리입니다. 어려울 때 내가 낸 세금의 3.5%조차 돌려받지 못한다면, 시민은 재정의 존재 이유를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체감 경기는 매우 경색되어 있습니다. 전체 취업자의 약 20%를 차지하는 자영업자중 상당수의 월평균 소득은 약 150만원으로 임시 노동자 소득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고물가·고유가 속에서 소득이 정체되자 서민들은 소비를 줄이고, 이는 내수 침체와 민생경제 파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습니다. 거시지표의 화려함 뒤에 숨은 절박한 민심을 외면한 채 시기와 효용성을 논하는 것은 시민의 고통에 눈감는 일입니다.

가정폭력 피해 아동이 목숨을 걸고 보낸 마지막 신호를 외면하고 방관한 끝에 비극이 터졌을 때, 그 어떤 뒤늦은 변명이나 사후 대책도 빼앗긴 어린 생명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행정과 정치도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당진시의회는 가뭄으로 타들어 가는 논에 물을 대듯, 민심을 살피고 마땅히 시민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힘들 때 쓸 수 없는 예산이라면, 그 어떤 핑계도 시민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