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석탄화력발전소 8기가 2029년부터 차례로 폐쇄될 예정인 가운데 발전소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지 묻는 자리가 열렸다.

당진시의회는 지난 24일 당진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석탄화력 폐지, 지역경제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의정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좌장은 박명우 의회운영위원장이 맡았다. 발제는 △여형범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박기남 충남기후에너지시민재단 상임이사가 맡았고, 토론자로 △김광석 한국동서발전 지역협력부장 △이승원 충청남도 에너지과장 △구자건 당진시 미래에너지과장 △박만희 한국동서발전노조 당진지부장 △신완순 당진시개발위원회 위원장 △김민호 당진상공회의소 사무국장 △황성렬 충남기후에너지시민재단 이사장이 참여했다.

이날 토론회는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및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이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나흘 만이다. 특별법은 발전소 폐지 2년 전부터 고용 안정과 지역경제 영향을 검토하게 하고, 폐지 지역에 대체산업 육성과 재정·고용 지원을 묶어 지원하도록 했다. 정의로운 전환 특구 지정, 발전소 기반시설 재활용 특례, 협력업체 사업 재편 지원 근거도 담겼다.

박명우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지금이야말로 당진 화력 폐지에 앞서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며 “2029년이 아니라 지금이 시작점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호 당진시의회 의장도 축사에서 당진시가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제도는 생겼는데 목표가 없다”

첫 발제를 맡은 여형범 연구위원은 특별법 제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국가 차원의 구체적인 목표가 빠져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정의로운 전환으로 무엇을 이룰 것인지, 성과를 어떤 지표로 잴 것인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고 봤다.

여 연구위원은 유럽연합(EU)이 2022년부터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만들어 영향을 받는 기업과 지역을 지원하면서, 기금을 받는 지역이 전환 계획을 세우고 그 과정에 지역 이해 당사자를 참여시키게 한 점을 소개했다. 지역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 거버넌스까지 함께 다루도록 한 점도 짚었다. 그는 과거 폐광지역 특별법을 운영한 경험도 되짚어 볼 만하다고 봤다.

여 연구위원은 안정적인 재원 구조와 시군 연합 형태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독일 루르 지역이 1950년대 석탄과 철강 산업 쇠퇴 이후 회복하는 데 30년이 걸린 사례도 들었다. 그는 “지역 기업과 노동자, 주민, 상공인이 합의하지 않으면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없고, 모델이 없으면 정부 재원을 확보하는 일도 어렵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박기남 상임이사는 충남 정의로운전환 기본조례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했다. 충남도는 2021년 2월 정의로운전환 기금 조례를, 2022년 12월 기본조례를 제정했다.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여덟 차례 넘게 포럼을 열어 만든 결과물이다.

다만 시민사회가 낸 초안과 최종 조례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특구 지정을 ‘신청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요청할 수 있다’는 재량 조항으로 바뀌었고, 위원회 권한도 심의·의결에서 심의로 줄었다. 지원센터 설치도 임의 조항으로 남았다. 박 상임이사는 당진시가 조례를 만든다면 실제 작동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례를 어느 부서가 맡을지를 놓고 충남도 안에서도 정리가 쉽지 않았다며, 제도와 함께 이를 실행할 조직 개편 논의가 따라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충남 21기 폐지, 당진만 8기

이승원 충청남도 에너지과장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놓고 폐지 규모를 설명했다. 정부는 2038년까지 전국 석탄화력 60기 가운데 36기를 폐지할 계획인데, 이 가운데 21기가 충남에 몰려 있으며 당진이 8기로 태안 7기, 보령 6기보다 많다.

이 과장은 “2020년 말 보령 1·2호기가 문을 닫은 뒤 보령 인구가 10만 선 아래로 떨어지고 지역내총생산이 3380억 원 줄었다”는 점을 들며 같은 피해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충남도는 2021년 2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정의로운전환 기금 조례를 만들어 도와 시군, 발전사가 1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함께 조성했다. 그러나 지방정부 기금만으로는 전환의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이 과장의 설명이다.

충남도는 2024년 1월 석탄화력이 있는 5개 시도의 연대를 이끌어냈고, 지난해에는 지방자치단체 통합 법안을 마련해 정부와 국회를 설득해 왔다. 이 과장은 이번 특별법의 핵심으로 △기후대응기금 등 정부 재원을 쓸 수 있는 법적 근거 확보 △정부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으로 협력업체와 노동자, 지역사회까지 지원 △대체 에너지 신산업 우선 고려와 기존 전력망 기반시설 활용 법제화 △정의로운 전환 특구와 고용·산업위기지역 우선 지정 근거 신설 네 가지를 꼽았다.

당진시 “폐쇄 대비 아닌 전환”…수소에 집중

구자건 당진시 미래에너지과장은 폐쇄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의 기회로 삼겠다는 방향을 내놨다. 당진시는 지난 12일 한국동서발전과 정의로운 전환 업무협약을 맺고 실무협의체를 꾸리기로 했다.

핵심은 수소 산업이다. 당진시는 2023년부터 2028년까지 680억 원을 들여 수소 생산기지와 수소교통복합기지를 짓고 있다. 생산기지에서는 축산 바이오가스와 도시가스를 원료로 하루 4톤가량 수소를 만들고, 교통복합기지에서는 승용차 300대와 버스 30대분을 공급할 계획이다. 석문국가산업단지에는 수소특화단지 지정을 신청해 현장 실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밖에 수소차 충전 인프라 구축에 65억 원을 투입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냉열을 활용한 산업용 가스 생산 실증, 초대형 해상풍력 베어링 부품 시험센터 구축도 추진 중이다.

구 과장은 “시 단독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노동자와 주민, 협력업체가 함께하는 지역 협의체 구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만 있고 일자리 없으면 정의로운 전환 아니다”

박만희 한국동서발전노조 당진지부장은 다섯 가지를 제안했다. △정의로운 전환을 전담하는 컨트롤타워와 로드맵 마련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노동 전환 △폐지 발전소 용지의 에너지 전환 산업지역 전환 △지역에 남는 일자리 관리 △당진형 정의로운 전환 거버넌스 구축이다.

박 지부장은 직업훈련 위주 대책에 선을 그었다. 그는 “교육은 많은데 일자리 없는 전환은 정의로운 전환이 아니다”라며 “고용 안정과 임금 수준, 노동 조건, 숙련과 경력 인정, 생활권 유지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발전소 노동자를 전환의 대상이 아니라 대규모 에너지 설비를 운영해 온 숙련 인력, 곧 전환의 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는 미래 에너지 산업에 지역 노동자 우선 고용과 지역 기업 우선 참여를 조건으로 걸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발전사 “1·2호기 2029년 말 폐지”…대체 설비는 외지로

김광석 한국동서발전 지역협력부장은 설비별 폐지 일정과 대체 계획을 내놨다. 당진발전본부는 발전기 10기가 가동되고 있고, 1·2호기가 2029년 말 폐지된다. 이에 따라 1호기는 전남 여수, 2호기는 울산화력 용지에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대체되고, 3·4호기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LNG 발전기 2기로 옮겨간다. 7호기는 전남 곡성 양수발전으로 넘어간다. 당진에 남는 계획은 5호기 수소 혼소와 8호기 수소 전소 검토 정도다.

김 부장은 회처리장과 저탄장 용지에 태양광과 배터리 저장장치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지방세수 감소와 인근 상권 타격을 막을 대책, 협력업체와 하청 노동자까지 아우르는 전직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탄소 발전이 뭔지부터 따져야”

신완순 당진시개발위원회 위원장은 특별법 제3조 4항을 문제 삼았다. 폐지되는 발전소 기반시설을 활용할 수 있게 무탄소 발전 등 에너지 산업을 대체산업으로 우선 고려한다는 조항인데, ‘무탄소 발전’의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소형모듈원자로(SMR)가 들어올 수 있다는 주민 우려를 전하며 협의회 구성 때 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령과 태안, 당진의 회처리장 용지가 200만 평 가까이 되는 만큼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냈다.

김민호 당진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은 기업 쪽 사정을 전했다. 당진 주력인 에너지와 철강은 고탄소 업종이라 재직자 평균 연령이 높고 청년 유입은 줄어 고령자 재고용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기존 산업이 무너지기 전에 대체 산업을 키워야 한다며 당진시와 충남도,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재원 마련을 제안했다.

“합의 없이 발표만”…사회적 대화 요구

황성렬 충남기후에너지시민재단 이사장은 이날 토론이 각 기관의 사업 발표에 머물렀다고 짚었다. 그는 “정의로운 전환은 어떤 산업을 만들 것인지 합의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며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 기구 구성을 요구했다. 반도체 특화단지가 전남·광주로 간 것도 지역이 몇 해 동안 준비해 정부에 제안한 결과라는 사례도 들었다. 그러면서 이번 토론회가 1회로 끝나지 않고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청중 토론에서는 태안화력 협력업체인 금화피에스시 노조 송상표 지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발전소 폐쇄로 가장 취약한 처지에 놓이는 쪽이 협력업체 노동자인데 정작 이날 토론자로 참여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재교육 프로그램에도 의문을 달았다. 협력업체 직원 상당수가 이미 산업기사와 전기기사 등 자격증을 여러 개 갖고 있는데 어디로 재교육을 보내겠다는 것이냐는 물음이다. 송 지부장은 “태안이 정의로운전환위원회를 꾸렸지만 기금을 다 쓴 뒤로는 위원회가 열리지 않는다”며 “당진은 같은 길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