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개정 농지법이 지난 8월 28일 시행되고 농지 전수조사가 진행되면서 당진 농촌에 “땅을 뺏긴다”, “평생 일군 땅이 반값이 됐다”는 불안이 번지고 있다. 정부는 “투기가 아닌 관행적 위반은 처분하지 않는다”며 12월까지 특별조치법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걱정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당진시대는 농촌현장의 불안을 기록하고, 소문과 사실을 가려 진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짚는 기획보도를 마련했다. △1회에서는 당진들녁 농민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2회에서는 농민들이 걱정하는 내용을 법 조문과 하나하나 대조해 오해와 진짜 허점을 가린다. △3회에서는 국회 회의록과 표결 기록으로 입법 과정을 추적하고, 당시 소관 상임위원장이던 어기구 국회의원과 정용선 국민의힘 충남도당위원장의 서면 답변을 싣는다.
“나이가 있으니 조금 있으면 농사도 못 짓잖아요. 자녀들 중에 와서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이거 팔아서 도시에 아파트 한 채라도 장만해 편하게 살면 좋겠다 했는데, 갑자기 이러니까 뒤통수가 얼얼합니다.”
우강면에서 13년째 벼농사를 짓는 B씨(75)의 목소리가 떨렸다. 직장생활을 하다 아버지가 계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배웠다. 6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혼자 논을 지켜왔다. 수십 년 농사지은 이웃들을 따라잡느라 애쓰다 이제야 “뭔가 좀 알 만하다” 싶었는데, 요즘은 “잠이 안 올 정도”라고 했다. 지난 8월 28일 개정 농지법이 시행되고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가 진행되면서, 당진 농촌에는 이 같은 불안이 소리 없이 번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당진시대 신문사를 찾은 우강면의 농민들은 “농민이 들어오는 문도, 나가는 문도 막혔다”고 입을 모았다.
팔리지 않는 땅,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농민 A씨는 이웃의 사연부터 꺼냈다. 건강이 나빠져 도시 병원 가까이로 옮기려던 한 주민이 집은 팔았지만 농지는 팔지 못해 그대로 발이 묶여 있다는 것이다.
“가격이 3분의 2, 2분의 1로 떨어졌는데도 거래가 안 돼요. 저도 8만 원가량에 산 땅이 13만 원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6만 원 얘기가 나오는데, 그래도 안 팔려요.”
A씨는 “농민 대부분이 자산이라고는 땅이 전부인데, 그 자산이 반토막 난 것”이라며 “이분들이 고령이라 10년 안에 땅을 정리해야 하는데, 마지막에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했다.
B씨도 “주변에 거의 다 65세 이상이고 젊은 사람은 별로 없다”며 “자식들이 와서 농사를 안 지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대대로 농사짓던 터전을 하루아침에 바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겠느냐”고 했다.
“들어올 문도, 나갈 문도 없다”
도시에서 대기업 정보기술 분야에서 일하다 우강으로 귀농한 A씨는 이번 법의 문제를 “버퍼에 선 사람들”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농민이 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농민이었다가 이제 농사를 그만두는 사람. 이 두 영역에 대한 대안이 없어요. 예전에는 땅을 사서 농사를 짓다 보면 농부가 됐잖아요. 그런데 땅을 사놓고 당장 못 내려가 누구에게 빌려주면 그것도 걸리고, 나갈 때도 농사 안 짓는 자녀에게는 넘겨주기 어렵게 됐어요.”
그는 “결국 들어오는 돈도 끊기니 땅값은 오르지 않고, 나이 들어 나가는 분들은 손가락 빨면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농지은행에 넘겨봐야 공시지가로 쳐준다는데 얼마나 쳐주겠느냐”고 말했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으면 결국 농지은행에 땅을 다 뺏긴다”는 말까지 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에 대해 농지은행에 위탁해도 소유권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도지' 끊기면 “젊은 농부”는 기계만 남는다
농민들이 꼽은 또 다른 걱정은 “도지”라 불리는 농지 임대차다. 우강에서는 50대 농민들이 “젊은 농부”로 불린다. 이들은 고령 농민이나 외지에 사는 상속인의 땅을 빌려 농사 규모를 유지해 왔다.
A씨는 “젊은 친구들이 도지를 많이 짓는데, 도지를 못 짓게 되면 장만한 기계만 남는다”며 “결국 젊은 농부들이 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농지은행이 맡아 빌려주는 땅도 “젊은 사람에게 우선권을 준다는데, 농민 대부분 60세가 넘는다”고 우려했다.
투기꾼 없는 들녘의 전수조사
농민들은 “투기를 잡겠다는 법이 투기와 상관없는 마을까지 똑같이 겨눈다”고 말했다.
B씨는 “우강은 땅에서 물을 뽑으면 짠물이 나와 벼농사밖에 못 짓는 곳”이라며 “특수작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도 아니다”라고 했다. A씨도 “우리 같은 데는 땅값이 거의 안 올라 투기 세력이 있을 리 없다”며 “투기가 있다면 개발 계획이 있는 합덕역 주변 같은 곳부터 보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전수조사도 조사원이 직접 나오기보다 이장이 대신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는 “그러다 보니 주민들은 아직 체감조차 못 하고 있다”며 “법이 정해지면 여기도 똑같이 적용될 텐데, 주변에서 한 사람씩 나가떨어지는 걸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신고포상금도 마을 공동체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개정법 시행에 맞춰 신고포상금의 1인당 연간 지급 상한은 1500만 원으로 높아졌다. A씨는 “한 동네 사는 사람끼리 서로 신고하게 만드는 게 국가가 할 일이냐”고 비토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농민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가 무엇인지, 농민 자격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무엇은 해야 하는지 행동 지침이라도 만들어 알려야 한다”고 했다.
정부 “즉시 처분 아니다”… 농민들 “12월 특별법 지켜봐야”
정부는 불안이 번지자 진화에 나섰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16일 설명자료를 내고 “위반이 확인돼도 중대한 위법이 아니면 1년의 자진 처분 기간을 먼저 주고, 성실히 경작하면 처분명령을 3년 유예할 수 있다”며 “곧바로 처분된다는 것은 오해”라고 밝혔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근거로 전국 농지 거래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2% 늘었고, 가격 하락률도 4.4%로 전년(5.3%)보다 둔화됐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부와 여당은 21일 처분 대상을 토지거래허가구역 허위 취득, 농업법인의 부동산업, 경매를 통한 지분 쪼개기 취득, 농업진흥지역 불법 전용 등 네 가지 투기 유형으로 한정하고, 상속농지 임대 같은 관행적 위반은 처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12월까지 농지 특별조치법을 만들고 내년 상반기 농지법을 다시 고치겠다는 일정도 내놨다.
그러나 농민들은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고 말한다. 보완책은 아직 법이 아니고, 처분을 얼마나 유예할지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12월에 바뀐다고 하니 그 안에 어떻게든 농민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며 “12월 안에 반영하지 못하면 그냥 이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진시 전수조사 연말까지
한편 당진시에 따르면 지역내 농지 전수조사 대상 11만6000여 필지 가운데 6만4000여 필지가 심층조사 대상으로 분류됐다. 이 중 약 3만 필지는 조사를 마쳤고, 나머지는 12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시는 읍·면에 기간제 조사원 30여 명을 채용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당진시 농업정책과 김영빈 과장은 “심층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농지법에 따른 처분 절차를 밟게 되지만, 처분 통지를 받아도 1년 안에 직접 농사를 짓거나 팔면 되고, 농사를 지으면 3년간 처분명령이 유예된다”며 “단순한 관행적 위반은 정부가 특별법으로 보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 만큼 우려하는 만큼 농업인 피해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법 전용 같은 경우가 아니면 이행강제금 단계까지 갈 필지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농어촌공사를 거치지 않고도 개인 간 임대차가 가능한 농지가 적지 않은데, 이를 몰라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농지법은 60세 이상 농업인이 5년 넘게 직접 농사지은 농지 등은 개인 간 임대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 매입에 대해서는 “정해진 예산 범위 안에서, 모양이 반듯한 땅 위주로 사들이다 보니 전부 받아주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이번 전수조사를 “그동안 없던 농지의 정확한 데이터를 구축하는 작업”으로 보며 “소유 중심인 현행 농지법을 일본처럼 이용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준비 단계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시는 대부분 농업인이 큰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으나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다는 농민들의 걱정, 그리고 마지막 기댈 곳인 농어촌공사의 매입 여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