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 갸, 거, 겨……아, 에, 이, 오, 우……
멀리 동네의 서편하늘에 붉은 노을이 쓰러지고 하늘을 휘휘 돌던 검은 새 몇 마리가 제 둥지를 찾아 들판을 가를 때면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밥을 짓는다. 아궁이에서 솟는 순백의 연기가 하늘에 닿으면 그것이 신호인 듯 어두운 하늘엔 별들이 달린다. 저녁상을 물릴 때쯤 어스름이 깔린 고요한 동네에 땡, 땡, 땡, 아슴푸레 울리는 종소리. 허리 굽은 어르신과 검디검은 얼굴의 남정네와 헤진 치마폭을 휘어잡은 아낙들과 붉게 튼 얼굴에 마른 버즘이 듬성듬성한 아이들까지 종소리의 근원지로 모여든다. 파르르 떨리지만 어떤 결의가 서린 듯 결코 꺼지지 않는 촛불. 그리고 담장을 넘어 잠든 짐승들을 깨우는 소리. 가, 갸, 거, 겨……아, 에, 이, 오, 우…….
일제시대 때 한글조차 깨우치지 못했던 농민들을 가르치던 야학당의 모습이다.
한글도 가르치고 숫자도 가르치고, 그랬던 겨
바닥에 까는 자리를 만드는 분이라고 듣고 찾아간 김덕영 할아버지는 대뜸 야학 얘기를 꺼내셨다. 무슨 말씀인가 싶어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는 내게 할아버지는 거친 숨을 고르며 한마디 거드셨다.
“심훈 선생, 청년도 알지? 그 심훈 선생이 상록수를 썼잖여. 그래서 상금 500원을 받았는디 그 중 100원을 우리들한티 내주는 겨. 심훈 선생의 장조카 심재영이란 분과 내가 그 돈을 받아 야학당을 짓는 데 썼거든. 그 터가 바로 요 뒤여. 땡, 땡, 땡, 종치면 마을 사람들이 죄다 모여들었지. 그래서 우리들이 한글도 가르치고 숫자도 가르치고, 그랬던 겨.”
송악면 부곡리에 있는 필경사(筆耕舍)는 ‘상록수’의 산실이다. 필경사(筆耕舍), 말 그대로 ‘붓으로 밭을 가는 집’이란 뜻이다. 그 필경사의 인근에 살고 있는 김덕영 할아버지는 심재영이 조직한 ‘공동경작회’의 회원이었다고 했다. 일제시대 당시 우리 사회 지식인들에게 유행했던 브나로드 운동을 바탕으로,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을 그린 ‘상록수’는 ‘공동경작회’를 모델로 삼아 쓰여진 소설이다.
이 손이 그래서 이렇게 된 겨
역사의 산 증인을 앞에 두고도 고개를 갸웃거렸으니. 무렴해진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데 할아버지는 이거 손님이 왔는디 뭘 대접한댜? 혼자소리를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문득, 거죽이 갈라지고 힘줄이 불거진 할아버지의 거친 손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 엉겁결에 움직거린 내 손이 할아버지의 손등을 덮자 따뜻한 온기가 손바닥 가득 번져왔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별 짓거리 다했어, 일 많이 했다구. 이 손이 그래서 이렇게 된 겨. 농촌계몽, 그거 여간 힘든 일이 아녀. 사람들 가르치지 말라고 일본놈들한티 구박도 많이 받았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거친 손이 얼마나 험한 세월을 지나왔는지. 손을 그토록 고되게 부렸던 할아버지의 꿈과 열망은 무엇이었는지. 그 손에서 번져오는 따뜻한 온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소리 없이 살다가, 이렇게 조용하게……
컹컹, 내가 제 주인을 어찌 할 줄 알았는지 뒤꼍에 매여있는 두 마리의 누런 개가 한참을 짖었다. 할아버지가 조용히 못혀, 낮게 뇌까리자 두 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의 몸을 바짝 붙이고 누워 할아버지의 기척을 살폈다. 예순에 혼자 되셨다는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27년을 혼자서 사셨다. 지식들이 아홉이나 있지만 모두 도시로 떠나보냈다고 했다. 같이 살면 뭐 하느냐고. 늙은이 하나 건사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그냥 이렇게 혼자 살다가 갔으면 싶다고. 소리 없이 살다가, 이렇게 조용하게…….
“지난 겨울을 요거로 보냈어. 여기저기서 자리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이 와갖구, 잘됐다 싶었지. 어떤 때는 한 뼘도 매고, 또 어떤 때는 한 자도 매고 그랬어. 겨울밤이 어찌나 긴지. 요렇게 자리 매다 보면 그 긴 밤이 뚝딱여. 자리 매다가 지치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그렇게 하다 보니께 어느새 땅이 녹고 볕이 따스해지드만…….”
자리를 맨 지가 70여 년은 됐구먼
자리 하나를 매는 데는 보름이 걸린다. 초승달이 점점 차올라 보름달이 되면 비로소 할아버지의 손길이 올올히 박힌 누런 자리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리의 값은 고작 16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할아버지에겐 값이 문제가 안 될 터였다. 그 긴 겨울밤을 오로지 자리를 매며 보냈다는 할아버지에겐.
“이것들이 다 70년 이상씩 됐지, 아마. 우리 아부지가 물려주신 거니께 그만큼은 됐을 거여. 열 다섯 살쯤 됐나, 그때부터 자리를 매기 시작했어. 근디 이걸로는 돈이 안 되거든. 농사 짓다가 누가 매달라고 하면 하나씩 매줬지. 가만 보자……그러고 보니께 자리를 맨 지가 70여 년은 됐구먼, 그려.”
그 낱낱의 춤사위들이 얽히고 설켜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았는지 가늠할 수 없이 반들반들 윤을 내는 자리틀과 검은 때가 입혀진 쇠고드레. 할아버지의 손이 움직이면 70여년 이상 묵은 저것들은 더덩실 춤을 출 것이었다. 그 낱낱의 춤사위들이 얽히고 설켜 자리 한 닢을 지어낼 것이었다. 말씀을 하시는 와중에도 할아버지의 손은 잠시도 쉼이 없었다. 자리틀에 걸린 쇠고드레의 짤랑, 하는 소리가 흥겹기도 하고 속 깊기도 한 알 수 없는 감흥을 일으켰다.
“내가 왜 자리 값을 16만원 받는지 알어? 15만원 받으면 재료값이 안 나와. 그래서 만원 더 받는 겨. 그 돈으로 재료 사 뒀다가 자리 한 닢 또 매는 거지. 그것이 아무개 엉덩이에도 깔리고 잠자리에도 깔리고 진 곳, 마른 곳 할 것 없이 요긴하게 쓰일 거구먼.”
할아버지가 자리를 매는 이유, 그것은 또 다른 자리 한 닢을 매기 위함인 것이다. 87세이신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 동안 그렇게 자리 한 닢으로 또 다른 자리 한 닢을 이어가며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숱한 밤들을 홀로 지새울 것이었다. 저승꽃이 점점이 피어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데, 귀가 어두우신 할아버지는 무얼 묻는 줄 아시고 혼자소리를 하셨다.
황토빛 산마루 위로 떠다니는 웃음소리
“요 뒤 산마루에 증조, 고조, 조부 할아버지 묘가 있거든. 묘지기 노릇하면서, 그 분들 지켜드리면서 그냥 살라네. 자식들헌티 짐 되면 뭐 하는가. 이렇게 혼자 사는 것도 재미져. 자리도 매고, 나무도 허고, 묘에 잡풀도 뽑고 할 일이 워간 많간디.”
그러면서 허허허, 웃으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처럼 저럴 수 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 내 머리에도 서리가 내리고 얼굴에 저승꽃이 만발해도 할아버지처럼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구차함을 떨쳐버린 듯한 할아버지의 웃음을 나도 누군가에게 띄울 수 있을까?
호가 황산(黃山)이라는 할아버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길게 이어진 황토빛 산마루 위로 할아버지의 웃음소리가 구름처럼 떠다니는 듯했다. 할아버지의 웃음소리가 귓전을 맴돌아 잠시 멈춰 섰는데, 멀리 동네의 서편하늘엔 노을이 쓰러지고 하늘을 휘휘 돌던 검은 새 몇 마리가 제 둥지를 찾아 들판을 가르며 날아갔다. 그리고 동네의 언덕에 지어진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 땡, 땡, 땡…….
이희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