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 말한다. 이 글은 영화 의 내용을 소개하거나, 출연배우의 연기가 어쨌다거나, 이러쿵 저러쿵 감독의 연출력을 평가하기 위해 쓰여지는 영화평이나, 기사 따위가 아니다. 그럼 뭐냐고? 글쎄… 혁명과 영화의 경계에서 살아온 한 인간에 대한 인상기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도 확실치 않다. 그러니, 그냥 잡스런 사람이 괴발개발 쓴 잡문으로 치부하고 읽어도 무방할 것도 같다.

그에게 전화를 받다

3월 중순 어느 날 저녁. 시인이자 소설가이고, 고전음악 평론가이자 공연기획자인, 그것도 모자라 그레이엄 헨콕의 을 번역하기까지 한 전방위 문화전사(?) 김정환(49)에게서 영화 보러 가자고 전화가 왔다. 자신의 집 서재와 술집만을 오가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영화를 보자고 하는 걸까. 그것도 시꺼먼 남자 둘이서. 의문은 그와 서대문의 허름한 순대국집에서 소주잔을 마주하고서야 풀렸다.

“노문연 출신의 후배 중에 조민호라고 있어. 걔가 입봉(감독 데뷔)을 했는데, 오라고 연락이 왔더라고. 내가 좋아하는 후배기도 하고, 본 지도 오래라 한번 만나볼려고 말야.”

음, 그랬군.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전신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약자인 노문연이 뭔가? 90년 결성되어 각종 학원집회와 노동자집회의 문화공연은 물론, 기획공연까지 무대에 올리며 노태우 정권을 귀찮게 하던(?) 좌파(혹은, 진보) 문화예술단체 아닌가? 여균동(영화감독), 강헌(음악평론가), 진중권(문화평론가) 등 지금은 유명인사가 된 딴따라(혹은,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몸담고 있던. 김정환은 또 누군가. 바로 그 노문연의 수괴(혹은, 두목)가 아니었던가. 역시, 운동권(요새도 이런 단어가 유효한지 모르겠지만) 의리는 수명이 길군.

“그런데 영화제목이나 알고 봐야죠. 뭡니까?”

“라지 아마. 왜 요새 홍보 많이 한다고 그러던데?”

재미있는 영화, 그러나 슬픈 영화

마시던 술을 다 해치우고, 택시를 잡아타고 극장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매다가 신촌 영화나라(혹은, 영화마당)라는 극장에 도착했다.

극장의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장혁과 이범수, 손창민. 그리고, 여배우 전혜진. 영화는 재밌었다. 지나치게 패턴화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이범수의 캐릭터 설정도 좋았고, 얼굴과 전력에 걸맞지 않게 ‘비열하고, 지저분한 삼류깡패’로 분한 손창민의 변신도 이채로웠다.

장혁의 혀 짧은 발음이 다소간의 짜증을 유발했으나, 영화의 맥을 끊을 정도는 아니었고, ‘부산 갈매기파’ 여자 건달로 출연한 3명을 비롯한 조연들의 연기도 감칠맛을 줬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배우는 청량리 588 창녀 ‘맥나영(혹은, 맥 라이언)’으로 분한 전혜진. 여균동의 에 베드신 대역 여배우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그녀의 연기는 리얼했다.

배우들의 호연(好演)과 무난한 영화의 흐름, 거기에 객석에서 터지는 웃음까지. 는 억지웃음이 아닌 자연스런 웃음을 부르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러나 왜였을까? 그 알콩달콩한 ‘재미’ 속에서도 의도적인 희망을 삽입한 마지막 장면에서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슬픔’이 묻어난 이유는.

그리고, 조민호와 술을 마셨다

당연한 수순처럼 종영 후 술잔이 돌았다. 수줍게 별 말을 하지 않고 내처 술잔만 들이키던 조민호가 입을 뗀 것은 영화에 참여했던 스태프들이 합류하기 얼마 전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자신이 다녔던 대학 옆에 있던 마지막 ‘매미집(혹은, 막걸리 작부집)’을 이야기했었던가?

“권력도 돈도 못 가졌을지라도, 사람에겐 꿈이 있는 거 아니에요? 일류대 출신의 변호사도, 잘 나가는 조폭은 아니지만 삼류 건달에게도 꿈은 있을 테고, 그 꿈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이건 위대한 꿈, 저건 조잡한 꿈’으로 분류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내 꿈도 그렇고…”

맞다. 시인 신경림(68)의 말처럼 ‘못난 놈끼리는 얼굴만 봐도 반갑’고, 못난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조민호는 이미 이 자명한 문학적 명제(?)를 터득하고 있었고, 자신의 화염병을 대신하는 무기로 선택한 영화에서 이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민중(혹은, 못난 놈 또는 노태우식으로 보통사람들)에 대한 더 없는 신뢰와 자신 스스로 민중임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발언의 방식과 도구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민호가 스무살 시절 던졌던 짱돌과 서른 일곱에 선택한 라는 영화의 차이는 없다. 그것은 ‘보다 아름다운 세상(혹은, 해방)’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측면에서 그 지향하는 방향을 같이한다.

얼핏 보기에 ‘만화처럼(혹은, 유치찬란하게)’ 비현실적인 의 결말은 이런 이유로 탄생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노문연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은 마르크스·레닌을 흠모한 이들이고, 마르크스·레닌 문예론의 정점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있다.

의도적으로라도 민중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고, 그 신뢰로 건설할 세상에 대한 전망을 삽입하는 것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니던가. 고리끼의 에서 읽었듯이.

조민호에게 기대를 걸어도 되는 이유

조민호가 를 통해 우리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버림받은 그들(혹은, 우리들)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힘의 원천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그들(혹은, 우리들)처럼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세월의 바뀜에도 표변하지 않으며, 스무 살 시절의 뜨거움을 아직도 간직한 채 초지일관의 삶을 사는 조민호에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기분 좋게 취했던 그 새벽. 바로 그 아침에 조민호는 다음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경남 울산으로 떠났다. 강팍한 도시의 삶을 라는 영화에 담아냈던 그가 ‘짙푸른 바다’와 ‘헤진 그물을 꿰매는 외진 어촌 아낙의 삶’을 보러 먼길을 떠났다.

그가 만난 사람과 세상은 또 어떤 영상으로 우리에게 돌아올까? 조민호가 던져줄 희망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나는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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