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충회

당진참여연대 회장

어떤 우스개 소리에 “미국의 월급을 받고 영국의 저택에서 일본인 아내와 중국 요리를 즐기며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홈스테이를 위해서 작년에 당진을 방문한 사와다시 댁을 방문했습니다.

방문단이 도착하자 사와다시 여사는 현관의 마루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손을 맞이했습니다. 나이 60을 바라보는데도 방문단을 최대의 예우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공항의 입국 수속이나 기관을 들렀을 적에도 여러번 느낀 점이지만 일본인은 한국인과 상대가 안될 정도로 친절했으며 특히 일본 여성은 더욱 친절합니다.

대부분의 일본 농가가 유럽이나 미국 수준의 부를 축적했겠지만 사와다시 가정은 더욱 부유하게 느껴졌습니다.

건평 50여평은 돼보이는 집은 목조건물이고 앞뒤의 정원엔 수천만원쯤 호가할 소나무 분재와 수석으로 장식돼 있었습니다. 집을 짓는데 우리 돈으로 5~6억원은 들어 갔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마모토의 야산에 자생하는 나무들은 스키라는 나무가 70%쯤이고 대나무가 30%쯤 돼 보일 정도로 두가지 수종이 많이 자라는데 이 스키라는 나무로 배를 만들거나 집을 짓는다는군요. 사와다시 집도 이 스키로 기둥과 대들보를 세우고 지붕은 일본식 기와를 올렸습니다.

방문단을 맞기 위해 이웃 농가의 여성 농민들이 20여명 와 있었는데 그들 중 몇 사람은 관광차 한국을 다녀갔고 한사람은 2월25일경 한국관광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최명식(전농 충남연맹 의장, 방문단 일행) 의장이 충남도 방문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는데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최 의장은 농담 반으로 얘기한 것인데 일본 사람들은 빈말은 거의 안 한다는군요.

며칠 뒤 진짜 그 여성이 관광객 12명과 함께 당진을 찾아 왔었습니다. 필자는 급한대로 우리 마을로 안내했습니다. 마침 우리 마을 노인회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 행사를 하느라 고사를 지내고 사물놀이도 하며 점심식사와 다과를 했기에 그들은 진짜 한국의 문화와 풍습을 관람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직접 사물을 두들겨 보기도 하고 막걸리도 마시며 안내한 필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와다시 부부는 방문단에게 최대의 귀빈 대접을 했고 상다리가 휘도록 술과 음식을 내왔습니다.

특히 여성농민들은 각자 농사지은 음식을 가져와 우리를 대접했고 방문단이 모두 남성인 점을 지적하며 다음엔 꼭 여성을 방문단에 포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일본 여성은 남편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사회활동과 농사일에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와다시댁에서 하룻밤을 지낸 방문단은 아침에 그 집의 비닐하우스 농사를 견학했습니다. 600평에 토마토를 재배하여 1,2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데 올해는 평년의 1/3가격으로 값이 폭락했답니다.

안내를 받으며 그 마을의 오이, 가지, 꽃 재배 하우스를 차례로 들렀는데 오이는 당도 4도의 신품종을 심어 상당히 전망이 밝고, 스토피라는 꽃은 완두콩처럼 생겼는데 꽃이 아름답고 붉어 일본의 내수시장에서 인기랍니다. 고소득 작물이라고 하더군요.

일본의 하우스 농사는 평당 2만원에서 1만원 정도의 소득을 목표로 한답니다. 가지를 재배하는 농가는 아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데, 28세인 아들은 정혼한 아가씨가 있어서 올해 결혼할 예정이랍니다.

사와다시 가족도 아들 내외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꼭 한국의 정서와 똑같고 오히려 선진국치곤 농촌의 가정이 한국보다 포근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 그렇기에 가장 왕래가 잦았던 나라이기도 하고 그들에 의한 피해도 많았고 감정이 좋지 못한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정치적인 문제가 가장 큰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간은 서로의 왕래를 통하여 이해하고 정치의 그릇된 점을 지적하고 요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농민회는 한·일 농민 교류를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