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형 수

당진읍 읍내리

김일 선수의 박치기 한방에 파안대소하고 입안 가득 원기소를 밀어넣고 온 동네를 헤메던 저녁, ‘굳센 체력 슬기로운 마음 명랑 운동회 시간’으로 주말을 보내던 나의 유년시절은 꽤 행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지금까지 박정희의 개발독재에 대해 거품물고 비판으로 일색하는 지식인들의 그 잘난 맛에 하는 소리(글)엔 별 동조를 하지 않아왔다.

마치 그것이 우리 정신문화의 진보적 징표인 듯하는 꼴도 우스웠다. 죽을 뻔한 투사였네, 살 뻔한 생육신이네 말들하지만 얼치기 진보들은 입을 다물라. 여기 온 몸으로 시대에 저항한 아름다운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있다.

한낮이 가까워도 손바닥만한 햇빛조차 들지 않고 허리를 펼 수조차 없는 1미터 50센티의 다락방 천장높이, 평화시장 4백여 공장에 상수도 시설은 한평짜리 세곳 뿐. 청계천 평화시장 만여명 노동자가 화장실, 수돗가 10개가 안되는 시설 속에서 하루 16시간 미싱 앞에서 청춘을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 조국 근대화의 그늘 속에서 청년 전태일의 가슴은 새로운 희망으로 벅차 올랐다. 그가 죽기 전까지 경전처럼 품고 다니던 근로기준법의 발견(?) 때문이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의 법조문 대로라면 청계천 피복공장 노동자들의 삶은 그런대로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런 믿음으로 ‘바보회’라는 단체까지 만들어 노력해 보지만 근로조건개선은 커녕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절망 뿐이었다.

법과 종교로 인해 구원받는 자들보다 상처받고 버림받는 자들이 더 많다는 것을 순진한 그가 알기에는 너무 먼 진리였을까. 아니면 그 진리를 터득한 것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 세상의 구원에 나섰다. 70년 늦가을 몇차례의 시위가 피복공장주들과 미리 내통한 경찰들에 의해 제지되자 전태일은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하기에 이른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의 마지막 유언을 진정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지금껏 많은 노동자들이 노력해오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고단한 노동의 현장, 부양해야 할 가족, 그리고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가난.

눈물로 지은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건 설움 뿐

나의 삶이, 그의 죽음이 부디 무의미하지 않기를…

◆지은이 : 조영래

◆출판사 : 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