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없어도 슬프지 않아요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있으니까요”

혹시라도 이 글이…

민규의 얘기를 쓰기 위해 펼친 하얀 백지엔 단 한 글자도 쓰여지지 않고 몇 시간째 까만 마침표만 찍어졌다.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 날카롭게 날을 세운 연필심이 뭉툭해질 때까지도 도대체 민규의 ‘민’자도 써낼 수가 없었다. 그 하염없는 망설임은 어느새 공포로 돌변해 나를 책상에서 벗어나게 했다.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다시 앉은 건 반나절이나 지난 후였다. 내가 그토록 머뭇거렸던 건 혹시나 이 글이 민규의 작은 가슴에 생채기를 내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고작 몇 시간을 함께 한 것만으로 내게 민규의 얘기를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공포의 끝자락을 홀쳐매고 민규의 얘기를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어쩌면 활자가 되어 여러분들에게 읽혀질 그 시간까지도 이 착찹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글이 민규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될 것이라는 믿음을 억지로라도 이끌어낼 수 없었기에. 민규가 감춰놓은 부분을 휘저어 도리어 이 글이 민규에게 또 하나의 슬픔이 될지 가늠할 수 없었으니……

조금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중인 민규에겐 같은 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여동생 민정이가 있다. 그리고 김호산(74) 할아버지와 최정자(68) 할머니도 있다. 민규와 민정 남매에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부모님이다. 엄마와 아빠가 없기 때문이다. 가진 자는 무엇인가 결핍된 자의 서러움과 슬픔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그 서러움과 슬픔은 결핍된 자의 내면에 가두어진 채 좀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민규를 만나는 동안 민규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민규는 좀처럼 자신의 아픔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것은 민정이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 가둠은 그들 남매가 익힌 삶의 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드러낸다 해도 자신들의 아픔을 그 누구도 끌어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민규와 민정이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단 한번도 안겨본 적이 없는 엄마와 아빠의 포근한 품. 고백하건데……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고,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들 어린 남매의 결핍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조차도 나는 겁이 났다.

둘 다 보고 싶지 않다고

지난 4월30일 조금초등학교 교정에서 민규를 만났다. 5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홍기동 교사에게 장난스레 뒷덜미를 잡힌 채 쭈뼛쭈뼛 걸어나오던 민규의 얼굴엔 옅은 그늘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민규의 얼굴에 내내 가실 줄 모르던 웃음. 참 밝고 건강한 아이였다. 민규와 함께 비포장길을 달려 대호지면 사성리에 위치한 민규의 집에 도착했다. 일찍 하교한 민정이는 마당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고, 그 옆에 선 할머니가 민정이의 머리에 더운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민규는 음료수 하나를 건네주었다. 됐어, 나중에 너 먹으렴, 손사래를 치자 민규는 냉큼 호주머니에 음료수를 넣어주는 것이었다. 머리를 말린 민정이도 오빠의 곁에 앉으며 젤리 하나를 아무런 말없이 들이밀었다. 너 먹으렴, 다시 손사래를 치자 민정이는 기어코 내 손에 직접 젤리를 쥐어주었다.

“음…… 민규와 민정이는 꿈이 뭐야?”

“경찰관요. 나쁜 사람들을 잡는 형사가 되고 싶어요.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이 많은데 나쁜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입으면 안되잖아요”(민규)

“유치원 선생님요. 애들이 너무 귀여우니까요.”(민정)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할아버지랑 할머니요. 할아버지는 힘이 세고 할머니는 밥 해주니까요.”(민규, 민정)

“그러면 할아버지랑 할머니께 뭐 해드리고 싶어?”

“같이 사는 거요. 할아버지 도와드리구여 할머니가 편찮으시니까 못하시는 거 우리가 다 할 거예요.”(민규, 민정)

많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민규와 민정이의 입에선 그 흔한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민규가 두 살 되던 해, 민정이가 갓 일곱 달되던 때부터 둘은 조부모와 함께 살아야 했다. 부모에 대한 변변한 기억도 간직하지 못한 민규와 민정이. 그리움조차도 없을 터였다. 그 작은 가슴에 들어앉은 슬픔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엄마와 아빠, 그 따스한 목소리의 여운마저도 남아있지 않은 서러움을.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와 아빠 보고 싶지 않니? 불안스러이 허둥거리던 민규의 눈. 끝내 말없이 먼 데를 보는 민규의 눈엔 한 가닥 슬픔이 걸렸다. 민정이도 종알거리던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생각나지 않아요. 기억도 없구요.”(민규)

민정이는 내 질문을 탓하기라도 하듯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둘 다 보고 싶지 않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유일한 욕심

민규와 민정이의 손바닥만한 작은 사진첩 어디에서도 엄마와 아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 작은아버지들이었다. 민규와 민정이는 금새 슬픔을 거두고 자신들의 어릴 적 벌거숭이 모습을 보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이 난 듯 책상을 뒤적거려 종이 뭉치를 꺼내들었다. 아이들의 손엔 그 동안 받은 상장들이 가득 들려있었다. 유난히 효행부분의 상이 많았다. 민규는 일일이 자신의 상장을 보여주며, 만약 엄마와 아빠가 있다면 상장을 이렇게 보여주고 싶어요, 불쑥 한마디를 건넸다. 이번엔 내가 슬퍼져서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것들이 아직 좀 들 커서…… 사람일이란 모르잖여.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노인네 앞날을 어떻게 알어. 저것들이 얼른 커서 잘 되야 할 텐디. 그게 제일 걱정이지, 뭐.”

민규와 민정이가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사는 것, 그것이 김호산 할아버지와 최정자 할머니의 유일한 욕심이다. 할머니는 시각장애인 1급에다가 오른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지체장애인 6급이다. 민규와 민정이가 할머니의 눈과 다리가 되어 주기 때문에 넉넉치 못한 살림이지만 그나마 큰 탈없이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마당에 차양을 치기 위해 세운 쇠기둥은 스트로폼으로 쌓여져있다. 자꾸 부딪쳐 상처를 입는 할머니를 위한 할아버지의 세심한 배려 중 하나다.

“얼른 죽었으면 싶다가도 저것들 올 시간이 되면 눈이 빠지게 기다려져. 우리야 다 산 인생 아닌가. 오늘 죽어도 그만, 내일 죽어도 그만인 거지. 그런디…… 그런디, 저 어린것들을 덩그마니 남겨놓곤 그냥 떠날 수가 없어. 민규 저것이 내 장손자 되거든. 힘 부치는데 까진 뒷바라지 해줘야지. 이미 끝난 인생이라 여기고 저것들 위해서 살고 있는 겨.”

민규와 민정이의 어린이날은…

할아버지는 말을 맺고 쓴 표정으로 담배에 불을 당겼다. 담배연기와 함께 깊은 한숨을 쏟아내는 할아버지. 문득 생각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이 언제쯤이면 맘 편히 펴질까. 일흔 넷의 할아버지는 올해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 열일곱 마지기의 논 중 그나마 열 마지기는 할아버지의 땅이 아니라서 지대를 물어야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민규와 민정이를 위해선 그거라도 지어야 살 수 있다고.

5월5일 어린이날, 민규와 민정이는 집안 일을 도울 거라고 했다. 차마, 다른 아이들이 부럽진 않냐고 물어보진 못했다. 빨래, 설거지, 청소 등을 하다가 날이 저물겠지만 그래도 민규와 민정이는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빨래를 개키다가, 혹은 양달에 내놓은 운동화가 마를 때쯤 민규와 민정이의 맑은 눈에 담겨질 하늘은 그 누구의 어린이날 못지 않게 푸를지도…….

『장갑』

학교가 끝나자 집으로 갔다. 그런데 문이 잠겼다. 열쇠를 찾아보니 없었다. 4시35분까지 기다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오셨다. 문을 열고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할어니께서 장갑을 사주셨다.

" 2001년 11월28일 민규의 일기 "

『고추줍기』

나는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도와달라고 하셨다. 오빠와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일을 도와드렸다. 고추를 따니 더웠지만 참았다. 힘들었지만 참고 도와드렸다. 할머니께서 칭찬을 해주시니까 기분이 좋았다.

" 2001년 10월14일 민정이의 일기 "

이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