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이야기한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을 표하는 말이다. 그러나 어제오늘의 우리 교육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바와는 다른 길로 질주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부분 인정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고등학교 교육은 대학입시라는 틀 속에 꽁꽁 묶여 있어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대학교육은 입학부터 취업이라는 불확실한 장래에 묶여 갈팡질팡하고 있다.

상당수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교육 선진국이라는 캐나다, 미국, 호주 등지로 조기유학 또는 검증 안된 어학연수를 보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은 호주를 방문했을 때 수많은 유학생과 어학연수생을 보고 느낀 바가 참으로 많았다. 아이들 교육 때문이라며 무작정 건너온 가족은 아직 반년동안 학교도 못보내고 표류하고 있었으며 자식교육을 위해서 정상적인 가족관계나 가정생활도 과감히 포기하는 용감한 한국인(?)도 몇몇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송금하고 어머니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생이별의 고난도 감수하고 있었다. 자녀의 성공이 부모의 성공이라는 등식이 정답이라면 과연 부모의 인생은 무엇인가? 대리만족의 기대감으로 키운 자녀가 올바른 자아정체성을 가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정 믿는 것인가! 라는 반문을 하고 싶다.

교육에 대한 숱한 책임의 공방 중에도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아이들의 부모인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며 문제해결도 우리 부모의 몫이란 것을 다수의 부모가 공감하고 있다.

우리 고장의 교육현실과는 약간 거리감이 있는 예를 들어보았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그 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영·유아의 어린 나이에 옆집 아이가 영어를 배우면 우리 아이도 해야하고, 피아노, 미술, 음악, 체육 등 수를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교육의 홍수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거역할 수 없는 틀 속에 갇혀 버리게 되는 것이다.

특별한 분야에 재능을 보이지 않는다면 천천히, 그리고 다양하게 접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자녀에 대한 기대감과 부모의 조급증이 아이들의 성장과정 속에서 치명적이고 다양한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면 한다. 또한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해서 미리 가르치는 선행학습이 되어서는 안되며 연령과 발달 단계에 맞춰 적절한 자극과 동기를 부여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0~3세에는 다양한 자극을, 3~6세에는 도덕성 교육을, 6~12세에는 언어·수학을 가르치라는 어느 교수님의 생각에 공감한다. 어린아이들의 미래는 부모의 생각과 행동에 달려 있으므로 우리 사회가 교육정체성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교육은 교육기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가정, 교육기관, 지역사회가 삼위일체가 될 때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순항할 것이다. 지쳐있는 교육에 새바람을 불어 넣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 곱씹어 보고 실천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