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며 배우며 아직도 꿈꾸는 베테랑
여행가이드 20년, 당진관광 정명진 부장
그가 대학공부를 시작하고 방송대 학생회장을 맡은 이유
“뼈를 깎은 경험을 정리해 가르치고 싶습니다”
체험학습 수학여행 판도 바꾸며 ‘당진씨티투어’도 구상중
한 직업에 종사했노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20년은 그것에 몸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근거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20년쯤 되어야 일을 통해 겪을 수 있는 희노애락을 웬만큼 겪어 푹 곰삭을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아마 그쯤 되어야 그 일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눈꼽만한, 마치 찰나와도 같은 짧은 경험을 가지고도 그것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비평하고 분석하며 호들갑을 떠는 우리. 한 20년 한가지 일을 하고 나서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게 될 지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경망은 쉽게 들통이 난다. 20년이라... 그때쯤 일과 거의 한몸이 되어 아무 말 없이 미소로써 질문에 답하고 있을 우리를 상상해보니 자못 장중한 느낌이다.
조용히 바쁜 사람이 있다. 500명에 이르는 방송대 학생의 심부름을 하는 당진군 학생회 정명진 (39세)회장.
최근 이사를 하느라고 비워둔 남산 도서관 자리에 만학도들의 학습관을 입주시키느라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뒤늦게 맘먹고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이 옛날 그 이유 그대로 ‘생활하기 바빠서’ 중도에 다시 포기하는 것이 안타까워 마음먹은 일이었다. 공연히 때가 늦어 레포트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시험때를 놓쳐 주저앉는 일이 없도록 일일이 학생기록부를 뒤지며 챙겨주기도 한다. 딱 1년만 만학도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 자신이 누구보다 만학의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 배우는 데에 때가 없다고 여기는 서양의 풍토와 달리 보통의 코스대로 전공분야를 공부하지 않으면 ‘비정상적인 길’로 여기는 사회적인 편견이야말로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러고 보면 ‘만학’(晩學)이라는 말 자체가 그러한 편견의 산물이다.
하지만 모든 개별적인 것은 다만 서로 다를 뿐이다. 어떤 것이 어떤 것에 비해 우월하거나 정상적인 게 아니다. 유난히 우리 사회가 ‘정해진 코스’에 대해 강박관념이 강하고, 그만큼 획일성에 물들어 있을 뿐이다.
실제로 방송대 당진학생회에는 미국에서 살다 돌아와 영문학공부를 시작한 50대 아주머니가 있는가 하면 대학강사로 있다가 전공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40대 아저씨도 있다. 문득 한분의 수녀님이 떠오른다. 나이 70에 수녀원 수녀를 정년으로 마친 뒤 의과대학을 졸업하신 분이다. 그분은 병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일에 나머지 생을 모두 바쳤다.
정명진씨의 본업은 여행가이드. 그는 20년 재직을 코앞에 둔 베테랑이다. 제주도를 비롯한 국내관광지와 중국, 동남아, 호주, 뉴질랜드가 그의 주여행지다. 그중에서도 제주도는 지금까지 150번은 족히 다녀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곳의 풀 한포기, 돌뿌리 하나 놓치지 않을 듯 뇌리에 선명하다. 최근에는 중국여행 기회가 가장 많고 아이들의 수학여행도 이골이 날 정도다. 정명진씨가 가이드하는 국내여행의 특징은 어디를 가든 현지가이드 없이 그가 직접 해주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가는 곳의 내력과 개요 뿐 아니라 환경적인 안목까지 가미해 설명해 줄 수 있음을 뿌듯하게 여긴다. 그것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 나름의 집요함과 오기로 현실의 장벽을 치고나오기도 했지만 지지난해 방송대 공부를 시작한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나태해지는 자신을 늘 연구하도록 채찍질하는 것은 공부하는 습관 그 자체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여행가이드를 시작했던 그때의 쓰라린 경험이 가장 큰 약이었다.
1982년 버스회사 사장인 매형이 당진관광의 문을 열자 고교졸업생인 정씨는 여행자인솔을 맡게 되었다. 국내관광가이드 시험까지 합격했지만 여행이 일반화되어있지 않던 당시의 콧대높은 운전기사나 언변이 유창한 안내양들은 정씨를 홀대하기 일쑤였다. 그때의 쓰라림을 정씨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객들 입에서 불편한 소리 한마디 나오지 않게 하려고 참으로 시종처럼 심부름했죠. 그런데요, 같이 안내하는 입장이면서도 나이 어리고 이렇다할 지식이나 전문성이 없어서인지 그분들은 제가 안중에도 없더라구요. 팁이 생겨도 저들끼리만 나누고... 저는 그걸 보면서 소외감에 안으로 눈물을 삼켰죠. 그때 마음먹었습니다, 이젠 내가 하겠다, 나도 할 수 있다구요.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정말로 제가 가이드를 직접 했습니다.”
처음에 왜 안떨렸겠느냐고 반문하며 정씨는 짧지않은 시간을 돌아보고 웃는다. 이 미소, 말할 수 없이 많은 것이 담긴 미소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다. 이제는 이길이 내가 갈길이다라고 여길 때쯤, 6개월간의 가이드연수에서 교수님 한분이 부르셨다. 해외여행가이드 자격증을 얻은 98년이었다.
그 분은 20년가까이 되는 그의 길고 한결같은 이력을 예사롭지않게 보아주셨다. “공부를 해보게. 우리나라 관광학에는 현장성이 빠져있네. 이론을 겸비하면 자네가 할 일이 많을 걸세. 늦었다고 생각지 말게.” 정씨가 그해 방송대에 입학한 것은 그말에 힘을 얻어서였다. 지금 경영학과 3학년인 그는 졸업 후 관광경영학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언젠가 쓰라림이 묻은 경험 20년을 누구에겐가는 삶의 지렛대로 나눠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벌써 철학과 향기가 담긴 여행을 모색하고 있다. 테마가 있는 여행, 체험이 함께하는 여행, 그래서 삶을 풍부하게 하는 여행을 꿈꾸고 있다. 그 시도라 할 수 있는 것이 모교인 서령고등학교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다. 지난해에 그는 수십년 붙박이인 수학여행코스를 관동팔경, 남도기행, 무의탁노인꽃동네 체험여행으로 나누어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학생들의 수학여행 체험기를 학교와 함께 책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최근 그는 당진의 안국사지가 최초의 석조문화라는 데 천착해 이것저것 뒤져보기도 하고 석문면의 백일홍전설을 왜목마을 개발에 응용할 것을 군에 제안해보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보는 여행”, 즉 당진씨티투어를 골똘히 구상해 보기도 한다.
그는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집요하게 움직이고 성실하게 할말을 한다. 한 20년 한일에 몸담은 사람이 풍기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것인가 보다.
김태숙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