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평면 매산리 정우철·이춘자 부부이야기
“언제부터는 원망도 없어지대. 모든 욕심이 없어져버린 겨. 내게 주어진 삶이니까.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늘이 내게 준 소임인 겨”
그곳에 전설 같은 사랑이
신평면 매산리 산53-9번지. 차 한 대가 겨우 다닐만한 거친 비포장길을 달려 작은 고샅으로 빠져들면 그 끝에 아담한 집 한 채가 있다. 대문을 열고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가면 환자용 침대 위에 정우철(62세)씨가 있다. 그리고 그 곁에 잠든 정씨를 지켜보는 이춘자(58세)씨가 있다. 여느 시골집과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다. 다만, 한 사람은 누워 있고 누워 있는 이를 지키는 또 다른 이가 있다는 것밖에.
쪼그려 앉아 숨죽이고 둘을 지켜본다. 잠든 정씨의 숨결이 거칠어질 때마다 이씨의 미간이 모아진다. 때때로 이씨는 침상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린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밭은 숨을 토해내며 정씨가 잠을 깬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린 정씨가 무어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웅얼거리면 이씨는 조용히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소반에 밥과 반찬을 챙긴 이씨, 정씨의 곁에 앉아 한 숟가락씩 떠넘겨준다. 너무도 익숙한 손놀림. 그렇게 밥 한 공기를 말끔히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이씨의 얼굴은 밝아진다. 어느 즈음에선가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더듬게 된다. 아무 것도 아니었던 그것은 슬픔이었다가 아픔이었다가 가슴 답답한 먹먹함이었다가 투명한 줄기를 이루어 한 곳으로 모아진다. 그렇게 숱한 감정의 웅덩이를 첨벙거리다 끝내 다다른 곳은 바로, ‘사랑’이었다. 그 둘 사이엔 그런 사랑이 있었다. 전설이 되어도 무색하지 않을 사랑이.
울부짖음으로 살 힘을, 다시 사랑할 힘을
1967년 11월17일 정씨와 이씨는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욕심 없고 착한 신랑과 활달하고 샘 많은 새색시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일년 후 건장했던 정씨는 감기에 걸렸고 그 여름 내내 기침을 달고 살았다. 건강하고 튼튼한 정씨였기에 대수롭지 않은 감기는 곧 떨어지리라 여겼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 어느 날 정씨는 피를 토해냈다. 부랴부랴 찾은 보건소에서 ‘급성결핵’임이 밝혀졌다. 이미 때가 늦어버린 것이었을까? 약을 써도 도무지 병세는 잡히질 않았다. 부인을 안아 올렸던 굵은 팔뚝과 구릿빛 허벅지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다. 누가 숟가락으로 퍼내기라도 한 것처럼 양쪽 볼도 쏙 파여졌다. ‘마엠브트리’라는 결핵약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7년이나 복용한 정씨. 결핵은 조금씩 호전되었으나 약의 독성으로 시력을 잃어야 했다.
“병원비 대려고 숱한 고생했지. 남편이 낫는다는디 뭔들 못하겄어. 농사짓는 틈틈이 바다에 나가 바지락도 캐고 벼 건조시키는 데서 일도 하고……그렇게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쉰을 넘어버렸어.”
병마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씨의 온전한 정신을 앗아갔고 우렁찬 목소리를 잃게 했다. 5년 전에는 치매가, 그와 함께 중풍이 정씨의 반신을 굳어버리게 했다. 병마는 정씨의 완벽한 소멸을 원했던 것일까? 3개월 전부터는 앉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저 누워있을 뿐이다.
억울할 때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씨는 아무도 모르게 외양간으로 갔다. 아이들과 남편 몰래 울 수 있는 곳은 외양간뿐이었기 때문이다. 큰 눈을 끔벅거리며 이씨를 반겨주던 소. 그 큰 눈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동안 가슴에 박힌 응어리를 풀어내곤 했다. 그렇게 남몰래 울부짖고 나면 다시 살 힘을, 남편을 사랑할 힘을 얻곤 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림자 마냥 붙어 다녔어. 일평생을 그렇게 하나처럼 산 거여. 모르는 이들은 잉꼬부부라고 부러워하대. 하도 붙어다니니께 흉보는 사람들도 있고. 때론 세상사는 게 억울했지. 그렇지 않으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그런디 말여, 언제부터는 그런 원망도 없어지대. 모든 욕심이 없어져버린 겨. 내게 주어진 삶이니까.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늘이 내게 준 소임인 겨.”
자그마치 37년이다. 일년간의 신혼생활이 꿈처럼 지나고 37년 동안 남편의 병간호를 해온 것이다. 이씨의 사랑은 소유가 될 수 없다. 혼돈이나 집착이나 얽맴, 욕망이나 사슬은 더더욱 아니다. 순간순간의 존재함 그것이 바로 이씨의 사랑이다. 하늘이 내려준 소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37년이라는 질곡의 세월을 어찌 견뎌냈겠는가. 따라서 그 사랑은 소멸하지 않는다. 소멸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37년이 흘러도 그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마치 아무리 긴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닳아지지 않는 불변의 전설처럼.
“작년 가을에 나도 고혈압과 당뇨병을 얻었어. 이 사람이 낮에는 자고 밤에는 말짱하게 깨어있거든. 젊어서 즐겨듣던 노래를 틀어놓고 같이 따라 부르면서 밤을 새지. 그런디 이 사람이 애들 이름을 부르다가 끝내는 울어. 이 사람이랑 같이 노래하다 울다가 기도하다가 별짓 다했지. 당신이라고 어찌 맘이 편하겠는가. 내가 고생한 세월만큼이나 이 사람도 고통이었던 거지. 그래서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겨. 그래서……”
그 어디엔가 사랑은 여전히...
이씨의 사랑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했다. 한참을 참다가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아직도 사랑하시냐고. 이씨는 내 질문을 막음 하듯이 흔연하게 말했다. 사랑한다고. 죽을 때까지 사랑할 거라고.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랑의 깊음과 질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그 차이가 현격하다. 특히 요즈음에 일컬어지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을 붙이기조차 왠지 어색하다. 쉽게 지치고 싫증나고 그리도 또한 너무 쉽게 등을 보여버린다. 그런 사랑은 증오로, 혹은 분노로 끝난다 해도 변명할 소지가 없다. 자신이 사랑을 그렇게 지어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 안에서 구현해내는 사랑이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 그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사랑을 둘러싼 신기루를 걷어내고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결국에 사랑은 가고 그 기억만 남는다고.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할 뿐 그 어디엔가 사랑은 여전히 아름답고 숭고하다. 사랑 그대로가 화석처럼 남아 전설이 될 만큼.
이희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