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지역언론연대 연수기(3) / 지방자치2(사진)

모든 도로에 인도 설치해 보행자 보호

실패한 시민회관 타산지석

편집자주

본사를 비롯한 전국 30여개 지역신문의 모임인 (사)바른지역언론연대에서는 2001년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지역신문과 지방자치 현황을 둘러본 데 이어 올해에는 최종길 발행인을 비롯한 임직원 6명이 참가한 가운데 7월29일부터 10박11일의 일정으로 유럽연수를 실시했다.

이번 연수에서는 독일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지역신문사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그리고 스위스 루체른, 인터라켄과 프랑스 파리의 문화자원 등을 견학했다

독일연수에는 에어크라트시의 민원국장으로 있는 크뤼거씨가 일정을 함께 했고 한국언론재단 독일통신원인 심영섭씨가 통역을 맡아 수고해 줬다.

① 독일의 지역신문 " 손은영 기자

② 독일의 지방자치Ⅰ " 유종준 기자

③ 독일의 지방자치Ⅱ " 유종준 기자

④ 독일의 문화 " 김정진 기자

⑤ 스위스·프랑스의 문화 " 이희철 기자

녹지와 쾌적한 환경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시민

유럽연수의 첫방문지인 독일 에어크라트 시에서 연수단 일행은 현지 민간단체(NGO)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서 연수단 일행은 녹지조성시민운동의 베르켄 부쉬 회장과 혹달 시민협회 캄프슐테 회장, 경제부흥협회 하이넨씨 등 세 단체의 대표들과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자리를 함께 한 세 단체 중 특히 녹지조성시민운동은 에어크라트 시의 특성을 잘 반영한 단체로서 눈길을 끌었다.

녹지조성시민운동은 녹지공간의 확보와 계획적인 도시개발을 통해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2년전에 설립된 민간단체다.

에어크라트 시의 시의회 의원이자 지구당 원내총무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는 베르켄 부쉬 회장은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설립된 단체”라며 “녹지보존과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개발정책이 수립되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녹지조성시민운동의 이러한 노력은 시청 주변에 조성된 시민공원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시청 바로 옆에 자리한 시민공원은 넓은 잔디밭과 수령이 백여년은 됨직한 나무, 잘 정돈된 화단 등으로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었다. 잔디밭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한 기혼여성이 나무그늘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특히 이 시민공원은 자치단체가 아닌 시민들이 직접 조성한 공원으로 녹지조성시민운동을 비롯한 시민단체와 일반시민들이 사재를 털고 무보수 봉사를 통해 관리하고 있었다.

민간단체의 활동과 시민공원의 조성에서 알 수 있듯이 에어크라트 시의 시민들은 녹지조성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듯 했다. 또한 에어크라트 시는 그러한 시민들의 요구를 시 정책에 충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 행정의 기본 이념은 도로 곳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에어크라트 시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모든 도로에는 반드시 인도가 설치돼 있었다. 우리처럼 예산부족을 이유로 인도없는 도로 곁을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아슬아슬하게 걷게 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그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그린벨트마저 파헤치려는 개발중심의 사고와 이를 공약으로 당당히 제시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에 익숙한 연수단으로서는 무척 낯선 풍경이었다.

이제 개발보다는 보전이다

프러시아공화국의 브로크 공국에 속했던 에어크라트 시는 지난 1966년 시로 승격됐으며 정부의 소도시 규모화 정책에 따라 1975년 1월 인근의 혹달 시와 통합됐다.

당시 추진됐던 정부의 소도시 규모화 정책과 대도시 인구분산 정책은 에어크라트 시를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시키는 주요 원인이 됐다.

이 때부터 인근 공업도시인 뒤셀도르프에서 상당수의 주민이 이주해왔고 이에 필요한 기반시설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정부의 정책도 작용했겠지만 우리보다 훨씬 앞선 산업화 과정에서 숨막힐 듯 각박한 도시생활에 지칠대로 지친 뒤셀도르프의 상당수 시민들은 더 좋은 주거환경을 찾아 에어크라트시로 이주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몇 푼의 개발이익보다는 충분한 녹지공간 확보와 높이제한을 통한 쾌적한 주거환경이 우선이었다.

에어크라트 시는 15년 전 전임 시장 재임 당시 시 주도로 고속도로 변에 산업단지를 유치하려 했으나 환경운동가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또한 현 시장이 취임한 이후 기업유치를 위해 산업단지를 조성하려 했으나 환경단체에서 습지보전을 들어 반대했다. 도심권과 연결하는 외곽 순환도로 건설계획 역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한 반대시위에 부딪혔다.

에어크라트 시는 결국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했으며 개발이익보다는 환경보전을 중심으로 시 행정을 추진했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같은 상황은 단지 에어크라트 시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보다 훨씬 일찍 산업화가 진행된 독일에서 이촌향도(離村向都)라고 불리는 도시 집중화 현상, 특히 젊은이들의 도시 집중은 이미 1930년대를 고비로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오히려 전후 1960년대부터는 젊은이들이 대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주하는 경향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찾아 상당수의 젊은층이 시골로 이주하자 기업들도 그 뒤를 따랐다. 출퇴근시 발생하는 교통체증과 쓸모없이 길바닥에 뿌려지는 돈, 배기가스로 인한 환경오염 등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제 독일에서 도시화와 산업화는 더 이상 발전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분별한 개발이 삶의 질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시민의식이 온갖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일회용품 사용을 금하고 원자력 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이끌어낸 근본적인 힘이었다.

용도를 무시하고 건축미만 살린 시민회관

연수단은 에어크라트 시에서 성공사례 뿐만 아니라 실패사례도 접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에어크라트 시에 도착한지 3일째 되던 날 연수단은 에어크라트 시의 시민회관을 방문하고 그곳 관계자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시민회관 관장 겸 시민학교 교장인 미하엘 슈트로마이어씨는 건물에 대한 일반적인 홍보 대신 혹독한 비판을 가해 연수단을 놀라게 했다.

슈트로마이어씨의 설명에 따르면 에어크라트 시는 1970년대 정부의 인구분산 정책과 소도시 규모화 정책에 따라 혹달 지역과 통합하면서 신도시를 개발하고 뒤셀도르프의 인구를 받아들여 위성도시로 변모했다.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 정부에서 준 선물이 바로 시민회관이었다.

당시 시 정부는 빠른 시일내에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충분한 사전계획없이 건물신축에 들어갔다.

시 정부는 혹달의 이주주민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유치원과 청소년·노인회관, 선술집, 체육단체, 도서관 등이 필요하다는 주민의견이 제기되자 이 모든 시설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의 설계를 공모했다. 이 공모에서 우어줄라 링레벤이라는 유명한 여성 건축가이자 뒤셀도르프 대학 교수가 선정됐다. 우어줄라 교수는 시민회관을 설계하면서 건물의 용도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것인가에 집중했다. 건물의 운영과 용도를 묻는 주민들에 대해서는 “운영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답변했다.

’75년 착공해 ’80년에 완공한 이 건물은 준공 후 전국의 건축가들 사이에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건물로 이름이 높았다.

그러나 아름다운 외양과는 달리 이 건물은 운영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실패에서 얻은 교훈

네덜란드에서 60년대부터 유행했던 시민회관을 모델로 지어진 이 건물은 남녀노소와 빈부의 격차를 넘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설계됐다. 건평 1,573평에 이르는 이 시민회관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앙의 광장이 핵심이었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노인·청소년 시설, 도서관, 선술집, 우주전망대 등이 공개된 채 하나로 연결됐다. 각각의 공간에 위치한 사람들이 광장을 통해 소통함으로써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기본적 이념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슈트로마이어씨에 따르면 그 같은 구상은 지나친 이상에 불과했다.

광장에 사람이 몰리다 보니 각 시설은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 각각의 시설이 독립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 둘 문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 때부터 광장의 의미는 퇴색되어 갔다.

많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시설을 입주시키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청소년들은 노인들의 눈을 의식해 뒷문으로 출입했으며 도서관과 우주전망대는 너무 협소했다. 갈수록 찾는 주민들은 줄었고 선술집은 영업부진으로 업주 7명이 파산했다.

이로 인해 1년에 유지비로 소요되는 60만 유로 중 30만 유로의 적자가 발생해 이를 시 정부에서 보전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슈트로마이어 씨는 자신이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우선 자치단체가 아닌 공공적 성격의 민간단체에서 운영해야 하며 시민들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단순한 시설이 필요하다. 관리인원에 대한 채용은 자치단체가 아닌 민간단체에서 맡아야 하며 별도의 운영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지나치게 크면 불필요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다양한 크기의 공간이 필요하며 기구와 책상 등의 도구는 이동식으로 구비해야 한다. 또한 시민들이 흥겹게 행사를 치르고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엌은 필수적이다. 상업적 목적의 시설은 공공기관에 설치하면 안된다.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