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이라. 시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수업하시던 학창시절의 국어 선생님. 서너 편의 시를 암송하지 못하면 매를 드셨기에 잊혀지지 않는 김영랑 시인의 “오 ~ 매 단풍들겄네”

장광에 불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

“오 ~ 매 단풍들겄네”

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 ~ 매 단풍들겄네”

가을이 깊어지면 시집갈 날 머지않은 누이의 모습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네 농촌사회 산촌의 정서, 차일 치고 잔치하고......어린 시절 낡은 흑백필름이 돌아가는 듯한 감상을 누를 길 없네. 다행히도 필자는 향리에서 공직에 오랜 세월 몸담고 있어 향수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집을 떠나 긴 여행에서나 느낄 수 있는 특전(?)을 부여받았는데 경향 각지에서 고향을 그리는 지천명의 세월을 깊숙히 넘긴 벗들에겐 새록새록 그리움이 쌓이는가 보외다.

화살 맞은 사슴이 마지막 돌아보는 쪽은 낳아서 자란 언덕이라고 했던가...... 해마다 한번 모이는 초등학교 동창회. 눅눅한 장마와 불순한 기후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추장스런 세속의 짐을 벗어던지듯 가가대소하는 모습에서 밝은 달빛, 은하수와 토끼. 좁다란 비나리는 학교길이 떠오른다. 고향은 어려서 노래 부르던 과거완료형 그것뿐일지라도 참말로 동창(인생)이란 묘한 인연이구나. 선택이 아니고 소중한 맺음이구나.

발달된 문명 속에서 급속히 번지는 비극적인 일들, 가족의 가치가 붕괴되고 자식은 물론 남편마저 교환가치로 강요되는 세태, 인생이란 장사가 아닌데 왜들 계산만 하고 따져가며 살려고 하나.....

목청을 높이는 공수골 살던 K, 남을 웃기기 위해 남몰래 많이 울어야 했다며 이승을 떠난 이주일의 얘기며, 청춘도 봄날처럼 후딱 지나간다. “기운 있을 때 동창회 빠지지 말어” 회비 재촉하며 치부책 갖고 바삐 움직이는 큰 미역꿀 사는 총무. 해가 뉘엇뉘엇하니 노래방이 급하다는 마이크 체질 J. 사람이란 출세했느냐, 못했느냐가 아니라 “치사하냐”, “떳떳하냐”가 삶의 기준이다 라고 명쾌한 갈무리를 하는 정착촌 살던 C야.

모두들 반갑고 정겹구나

단풍들기 전에 또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