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옆집 할머니같은 친근함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동그마니 웅크리고 앉아있는 허름한 집 한채가 아주 조금씩 비에 젖고 있었다. ‘할머니 야식’이란 간판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던 자상한 옆집 할머니처럼, 그의 첫인상은 친근했다. 골이 깊게 패인 주름에 뭉툭한 손마디는 그간의 생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을 거라는 것을 예견해 주었다.
그날 장사할 음식 준비에 한창 바삐 일을 하고 있던 할머니는 없는 시간을 내서 반겨주셨다. 할머니는 말수가 많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편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내 외할머니 앞에 앉아서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오랫동안 장사를 하며 많은 손님들을 대한 데서 나오는 할머니의 인상과 태도는 족히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으로 돌려보내기 충분했다.
손님들과 한가족처럼 지내요
할머니는 요즈음 장사가 끝나는 새벽 4시에서 5시쯤 잠자리에 들고 오전 11시나 12시쯤 일어나 장사준비를 한다. 빡빡한 일과가 올해 칠순인 할머니에게는 무리인 것 같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편해진 셈이다. 퇴근시간이 좀 지나면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해서 자정쯤이면 눈코뜰 새 없이 바빠진다. 그래도 할머니는 피곤하다는 넋두리 한번 하지 않는다.
아들 친구들이나 조카 친구들이 오면 “어머님, 어머님”하며 할머니를 잘 따른다. 이 집에 오래 들락거린 단골 손님들 또한 마찬가지다. 할머니가 한창 바쁠 때면 자기들이 알아서 음식도 갖다 먹고 다 먹은 그릇을 주방에 갖다 주기도 한다. 대부분이 오래된 단골 손님들이라 손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들 한 집 식구처럼 지낸다. 그래서 할머니는 한창 바쁠 때 손님이 무어라도 찾으면 “냉장고에 있으니까 꺼내 가”하고 스스럼 없이 말할 정도다.
할머니 야식에는 15~20가지 메뉴가 있는데 가끔 없는 메뉴를 시키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아 그럼 해 줘야지” 하고 대답하신다. 또 배고파서 들어 온 사람한테는 국 한 그릇, 물 한 모금이라도 더 주고 싶은 것이 사람인심이라고 말한다. 할머니의 그런 인심 탓인지 계절을 타긴 하지만 꾸준하게 장사가 되는 편이라고 한다.
평생 음식장사를 해 온 할머니 음식솜씨는 소문이 파다하다. 닭발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 한번 먹어 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얼마치씩 사 가기도 하고 차를 가지고 와서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도 안주감으로는 닭발이 최고라며 사가기도 한다.
말썽부리는 사람들도 모두 내 손님
손님들 중 행동거지가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맘잡고 착실하게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라도 하면 할머니가 친자식처럼 이쁘다고 칭찬해 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고 한다. 가족들 사이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들이다.
가끔은 기분이 안 좋아서 오는 손님들 중에 싸움도 하고 그릇을 부수는 사람도 있다. 할머니로선 난처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고 하신다. 오히려 달래고 다독거려 돌려보내면 다음 날 꼭 할머니께 죄송하다며 사과하러 온다. 친자식처럼 대해 준 할머니인데 사과라도 안하면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종종 실수를 하는 사람들은 혹시나 해서 다시 찾아올 때 “그날 제가 실수한 것이 없냐”고 넌지시 물어보기도 한다. 할머니는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스트레스가 쌓여 온 손님들이 맘 편하게 얘기도 하고 그날 피로를 풀고 가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며, 누구나 약간의 실수는 할 수 있는 거라 하신다.
단골손님 중에는 오래 전 학생신분으로 와서 술을 달라며 실랑이를 한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애아버지가 되어 찾아온다. 오랫동안 장사를 한 덕분에 이렇게 손님들과 같은 추억거리도 많이 가지고 있다는 할머니는 흐뭇해 하신다.
힘든시절을 보상해 주는 자식들
예산군 고덕면이 고향인 할머니는 당진으로 시집을 왔다. 어려운 형편에 남의 집살이를 하면서 낮에는 품을 팔고 밤에는 통행금지 직전까지 포장마차를 했다. 게다가 아이들 아침밥 챙겨주고 도시락 싸주고 하려면 또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다. 그 때 할머니는 하루에 2시간 정도밖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된 생활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고생 끝에, 포장마차를 그만두고 조그만 식당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 이 자리로 와서 장사를 시작한 지는 12년 정도가 된다.
잠 못 자가면서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해서 형편이 하루아침에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슬하에 둔 3남 1녀를 가르치고 겨우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할머니가 하루 2시간씩 자면서 억척스럽게 산 덕분이다.
밤새 서서 일을 하다 보니 할머니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더 쑤시고 아파서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고 한다. 식사시간 또한 불규칙해서 위도 좋지 않지만 슬하에 둔 3남1녀가 모두 효자 효녀들이라 걱정 없다며 은근히 자식 자랑을 하신다. 아들 3형제가 모두 가까이 살아서 든든하기도 하고, 며느리가 수시로 약도 사다 주고 아픈데 없냐고 물어보기도 하며 신경을 많이 써준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손에 밀가루 반죽을 묻힌 사람이 잠깐 들렀다 간다. 할머니의 큰아들이다. 큰아들은 할머니 야식집 맞은 편에 똑같은 간판을 걸고 한달 전부터 칼국수집을 열었다. 문을 연 지는 한달이지만 벌써부터 꾸준하게 장사가 되는 것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할머니에게 배워 큰아들 음식솜씨 또한 손님들의 입맛을 끄는 듯했다.
자식들 얘기를 하는 동안 할머니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할머니의 편안함에 젖는 손님들
특별히 보람이랄 것도 없지만 손님들 와서 얘기하면서 그날 하루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고 즐겁게 있다 가는 걸 보면 뿌듯하다는 할머니. “늘그막에 사는 재미가 뭐가 있것슈, 일하는 재미로 사는 거지”하고 말하는 할머니는 사람들이 지친 몸을 끌고 와서 하루동안의 노고를 닭발 한 접시와 술 한잔으로 풀며 이야기하는 걸 보는 것이 낙이다.
매달 월세를 내고 장사를 하는 할머니는 “불편한 게 있으면 내가 조금씩 고치고 살면 되지”하시며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며 욕심없이 살고 있다. 여기서 장사하면서 단골손님들 만나는 것이 그저 즐겁다고 말하는 할머니. 소박하지만 이 말 속에서 사람 사는 재미를 쏠쏠히 느낄 수 있다.
주민등록을 떼러 가면 읍사무소 직원이 “할머니 이름이 참 곱네요”하고 말할 정도로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할머니의 이름은 ‘고을님’, 이름 뿐 아니라 할머니의 삶도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고희의 나이에서 느껴지는 포근함......
할머니 야식집을 나오면서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빗방울이 굵어지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간간히 내리는 비는 겉옷을 조금 적실 뿐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할머니는 평생을 눈에 띄게 큰 일을 해가며 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손님들을 맞으며 아주 조금씩 그들의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손님들마다 할머니의 ‘젖은 길’로 접어든다. 아주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산 옆집 할머니처럼,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흠뻑 젖어 할머니 야식의 단골이 된다.
30년 넘게 장사를 해 온 이력만큼이나 깊게 패인 할머니의 주름 속에서, 사람들은 고향의 품에 온 것 같은 포근함을 맛보기 위해 출출한 저녁, 발길을 옮기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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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