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쉬운 것도, 남부러운 것도 없습니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질 때까지.

내가 추구하는 것들을 화폭에 담아내는 일만 남았죠.

그렇다고 즐겁진 않습니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테니까요”

그림을 좇는 사람

누구에게나 먼 빛이 있다. 그것이 아니면 안 되는, 외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열망 하나씩은 지니고 있다. 먼 빛이기에 좇아야만 하는, 그러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또 저만큼 멀어지는 그런 빛이 있다. 좇는다 해서 잡히거나 주어지는 일이 없으니 어찌 보면 가혹한 일이다. 울쑥불쑥 서러움도 솟는 일이다. 그래도 먼 빛을 좇아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추하거나 미워 보이지 않는다. 이종호씨에게 그 먼 빛은 바로 그림이다. 청년시절부터 그림을 시작해 어느덧 이십여년이 훌쩍 지나 이제 불혹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그에게 있어 그림은 아직도 미혹으로 남아있다.

그림을 좇는 사람, 이종호씨를 그가 올해 3월에 ‘큰 맘’ 먹고 마련한 면천면 죽동리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상업미술에서 순수미술로

그의 작업실은 아미산 끝자락에 살짝 걸쳐 있다. 대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선 후 무례를 무릅쓰고 여기저기 방문을 열고 안을 훔쳐봤다. 창고에는 그가 지금껏 그린 그림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고, 침실로 쓴다는 방에는 천장까지 닿을 듯한 책꽂이에 온갖 책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을 뿐 TV하나 없이 휑뎅그렁했다. 그의 작업실엔 사람 키보다 큰 이젤이 어떤 정령처럼 우뚝 서 있었고 그 위에 아직 미완성의 작품이 걸쳐져 있었다. 가스스토브를 켜고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는, 70년대에나 사용됐을 법한 초등학생용 나무 의자에 쪼그려 앉아 묵묵히 담배 한 대씩을 피웠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상업미술을 한 3년간 했었죠. 도안도 그리고 광고사에서 일도 해보다가 순수미술을 하고 싶어서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당진에서 박기호 선생 밑에서 일년간 그림을 배웠었죠. 지금 생각이지만 그때 서울에 눌러앉았다면 지금보다 고생은 덜 했을 것 같네요.”

돈보다는 그냥 그림이 좋아서 순수미술을 택했다는 그는 그렇게 스물 여섯, 청년기의 정점에서 관동대 미술교육과에 입학해 순수미술을 향해 인생의 키를 돌렸다.

허수아비와 바위

대학 졸업 후 송악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그는 1991년 허수아비를 주제로 한 그의 첫 번째 개인전을 당진신협 전시실에서 열었다. 그가 허수아비에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외국사조를 많이 따르고 있는 미술계의 전반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민족적인 색채와 민중성을 화폭에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98년 그는 서울의 도올아트타운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갖게 되는데, 이때 그의 작품의 주제는 바위였다. 7년이라는 긴 침묵의 시간동안 고민하고 탐구했던 결과가 ‘굳건함’과 ‘흔들리지 않음’을 표상하는 바위로 귀결된 것이었다. 그가 왜 바위를 화폭에 담아냈는지 당시에 그가 밝혔던 작가의 말을 잠깐 옮겨본다.

「높은 산에서, 저 넓은 바닷가에서, 황량한 벌판에서, 뜨거운 태양과 눈보라, 폭풍우를 온몸으로 맞으며 오늘도 묵묵히 바위는 거기에 그대로 서있다. …중략… 가장 원시적인 자연의 일부인 바위에서 나는 내 인생의 삶의 철학을 배우고 싶다. 그리고 우리의 산하에 있는 바위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앞으로 내가 풀어가야 할 내 작업의 실타래이다. …중략… 때로는 잘못 풀어 헝크러질 수도 있고 영원히 풀 수 없을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어떤 희망을 가지고 계속 풀어나가려 하는 것이 나의 의지요 생각이다.」

그의 손과 마음에 의해 화폭에 담겨진 바위들은 있는 그대로의 바위가 아니다. 그는 바위 속에 내재돼 있는, 그리고 그가 찾고자 하는 것들을 투영시켜서 바위에게 생명력을 부여했다. 「세월」(캔버스에 유채, 99.5×159.5cm), 「가족」(캔버스에 유채, 88.5×130cm), 「사랑」(캔버스에 유채, 79.5×99.5cm) 등의 작품에 나타나 있는 다소 투박한 형상의 바위들은 하나 같이 사람의 모습을 닮아있다. 의인화된 바위에서 스며 나오는 진중한 삶의 철학은 가볍고 얇고 빠르게 흘러가는 인간의 삶에 아련한 경종을 울린다.

그의 새로운 화두 ‘흰 선’

현재, 당진수협 맞은편 ‘갤러리 전람회의 그림’에선 그의 세 번째 작품전 ‘우리꽃 그림전’이 열리고 있는데, 이번 작품들에 강조돼 있는 하얀 선이 유독 관객의 눈을 잡아끈다. 꽃잎의 선을 따라 이어져있는 단순하고 절제된 듯한 흰 선은 갖가지 들꽃들의 화려한 빛깔을 압도하고 있다. 종종 자신이 진정 그림쟁이인지 자책하는 그에게, 여태껏 대표작이 없다고, 앞으로도 없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그에게 언제부턴가 흰 선이 영감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서양의 그림은 입체적이지만 동양 그림의 매력은 간결한 선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의 특징 중 하나도 바로 흰 선에 있죠. 어차피 그림이라는 것이 세상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라면 가장 단순한 선의 표현이 가장 꾸밈이 적고 순수한 실체라고 생각했죠. 흰색은 색이 아니고 빈 색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어있으니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세상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흰 선의 아름다움을 계속 탐구할 생각입니다.”

표현 가능한 모든 것들을 화폭에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들의 작품들을 실험작이라고 말한다.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마침표가 없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지금까지 너무 게을렀음을 씁쓸하게 고백했다. 그림과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표현 가능한 모든 것들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 불혹의 나이에 그가 세운 단단한 계획이다.

“자연과 사람, 생태와 환경 등 앞으로 작업해야할 분야가 참으로 많습니다. 사실 그동안 너무 많이 놀았어요. 이제 아쉬운 것도, 남부러운 것도 없습니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질 때까지 내가 추구하는 것들을 화폭에 담아내는 일만 남았죠. 그렇다고 즐겁진 않습니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테니까요.”

그의 유일한 꿈은 그만이 가질 수 있는 독창적인 그림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과거에 그린 자신의 작품들을 재구성해 그 속에 더 깊은 삶의 의미를 담아낼 계획이다. 거듭 태어나는 그의 작품들이 ‘그림과 삶에 대한 공부’로 기나긴 겨울을 지새울 그에게 희망의 길을 열어주리라 믿는다.

이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