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성에 근거한 투표행태 종결
기존 정치권 혐오가 정몽준 지지, 노·정 단일화 지지로 이어져
행정수도 이전 공약 민주당 한계 상쇄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민주당 대전선거대책본부 한 당직자가 내놓은 당선 소감이다. 그랬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최소한 선거일을 10여일 앞둔 시점까지 누구도 충청권에서 노의 승리를 자신 있게 장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기적은 ‘얻어진 기적’이 아닌 말 그대로 ‘일궈낸 기적’이었다.
충청권 유권자들에게 이번 대선은 낯설고 새로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하루 하루 ‘정치적 홀로 서기’를 위한 선택을 요구 받았다.
첫 번째 선택의 기로는 JP(자민련) 였다.
1987년 이후 15년여 동안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쳤던 JP.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JP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 출마도 안한 김종필을 자꾸 얹어 묻는 데요?” 대선 과정 동안 민심을 쫓는 기자에게 되던져진 것은 JP를 왜 대선과 연관 시키냐는 항의성 질문이었다. JP에 대한 부정은 충청권에서 지역성에 근거한 투표 행태의 종결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사실 유권자들은 이미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JP로부터의 길고 긴 지역성의 연줄을 끊어버렸다. 자민련은 JP의 영향력에 힘입어 지난 2대 지방선거에서 대전·충남 광역-기초단체장 20곳 중 16곳을 당선시키는 등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반면 지난 6월 선거에서는 충남지사와 대전 구청장 5명, 충남 기초단체장 7명만을 배출해 참패를 면치 못했다.
더 이상 ‘영남은 한나라당, 호남은 민주당, 충청은 자민련’이라는 등식으로 충청권을 공략할 수 없게 됐다. 자민련호에 구멍이 뚫렸고 JP는 더 이상 충청권의 맹주가 아니었다.
JP가 떠난 여백을 무엇으로 채울까에 대한 숙제가 주어졌다. 익히 이를 예견한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에게 JP가 남긴 여백은 더 없이 크고 값져 보였다. ‘충청권 고향론’과 ‘지역발전론’을 앞세워 들어섰고 첫 진출은 매우 성공적인 듯 보였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선전에 이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겪어보니 자민련하고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얘기가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뱀 허물 벗듯 자민련을 탈당해 이름표만 한나라당으로 바꾸는 경우가 속출했다. 유권자의 눈에 ‘원조 보수’를 기치로 내걸던 자민련과 ‘보수’를 자처하는 한나라당이 그게 그것인 것으로 비춰 진 거다.
추석 이후 지역 민심이 크게 술렁였다. 정몽준 후보에 대한 가히 폭발적인 관심과 지지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0월 중순 경 여론조사에서 대전 충청지역민들은 전국 최고 지지율(33.3%)로 정 후보를 선호해 이 후보를 압도(31.1%) 했다. 노무현 후보에게는 “당이 마음에 안든다” 며 마음을 열지 않았다(14.6%). 민주당에 대한 반감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도 대접받지 못했다는 반감까지 겹쳐 있었다.
실제 당시 지역민들은 정 후보에게 쏠린 높은 관심의 이유로 “참신하다”, “적어도 친인척 비리는 저지르지 않을 것”, “권력을 잡으러 혈안이 된 것 같지 않다” 등을 들었다. 변화할 줄 모르는 기존 정치권의 모습에 대한 혐오가 정 후보에게 몰린 것이다.
이같은 지지율은 정.노 후보 단일화때까지 이어졌고 단일화 이후 노 후보의 지지율을 급상승 시켰다. 여기에 ‘행정수도 이전공약’은 노 후보가 가진 당의 한계를 상쇄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공약의 실현여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서울 대통령 시대를 끝내겠다는 반복된 약속에 쌓였던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렸다.
“솔직히 행정수도를 당장 이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지방을 살리려면 행정수도는 물론 수도까지 이전해야 하는 건 당연 하잖아요. 해보기도 전에 처음부터 ‘못한다’, ‘안한다’는 것과는 근본이 다르다고 봐요.”
지난 12월 초 대전 삼천동에서 만난 한 시민의 토로는 대전 충청민의 보편적 생각에 다름 아니었다.
반면 선거 막판 노 후보의 행정수도와 관련한 인천 발언의 파고는 높았다. 한나라당의 총공세속에 노 후보의 인천 발언은 가는 곳마다 유권자들의 얘기 꺼리였다. 당시 충남 부여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주부는 “멸시 받고 사느니 다시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 ‘지역주의’가 고개를 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걱정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몇일 후 평정을 되찾았다. 대신 노 후보가 누려왔던 행정수도 이전 효과는 크게 반감됐다.
당시 대전 민주당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공약으로 노 후보에 쏠렸던 유권자 관심을 한나라당이 효과적으로 차단했다”고 평했다.
하지만 승패를 가르는 핵심은 일시적 ‘이슈’에 있지 않았다.
“고생 한번 안 해본 사람을 뭘 믿고 대통령 시켜. 농사 한번 안져 본 자식놈에게 땅 물려 줄 수 있어.”
기자는 선거운동 과정 내내 곳곳에서 이같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충남 청양의 한 촌로에게서, 충북 영동의 한 오지마을에서, 대전의 한 재래시장에서도 유사한 얘기가 반복됐다.
“서민 후보 찍어야죠”, “얼어터진 내 손좀 봐요. 벌어먹고 살려고.. 조금이라도 고생한 사람이 낫겠죠”
노 후보가 걸어온 가난과 역경은 이 후보와의 격차를 벌리게 한 주요 동인이 됐다.
민주당 이인제 의원이 탈당한 것은 노 후보의 지지세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이었다. 이 의원이 탈당에 많은 유권자들의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그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가혹했고 차가웠다. 이 의원의 정치적 고향인 논산에서조차 “이제 이인제를 버려야 할 때 굡遮 성토가 쏟아졌다. JP와 이인제의 행보가 충청 표심의 향배를 가를 것이라는 언론의 분석에 유권자들은 “누가 그러냐”며 혀를 찼다.
충청 유권자의 선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투표를 몇 시간 남겨 두고 ‘정몽준 쇼크’가 터졌다. 많은 전문가들이 충청권 표심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예측했다. 선거 당일 내내 충남 각 시·군 지인들에게서 “투표하러 안가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 예측이 맞아 떨어지는 듯 했다. 당일 만난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의 상당수가 “정몽준의 노 후보 지지철회 소식을 듣고 투표 의욕을 잃었다”고 답했다. 예상대로 최종투표율은 대전 67.4%, 충남 64.5%로 전국 최하위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자리잡은 표심을 바꾸지는 않았다.
20일 아침, 출근길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싱글 벙글하며 말한다.
“충청도 사람들 참 대단해요. 이번 선거에서 지역갈등 확실하게 깨 놨쟎아요. 손님들하고 얘기해 보면 참 많이 변했습디다. 내세울만 해요.”
심규상 충남지역신문협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