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밥 한끼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노인들을 바꿔놓은 것은 따뜻한 마음의 위로였겠죠. 굶주림에 지친 힘겨운 생을 견뎌왔고 또 다시 힘겹게 생을 마감하고 있는 노인들의 근심과 걱정에 찌든 얼굴이 밝은 얼굴로 변하는 것을 직접 보았죠. 그 밝은 얼굴에서 오히려 우리들이 많은 것을 얻었는지도 몰라요.”

거역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

텅 빈 들녘을 점점이 덮고 있던 잔설들이 녹고 있다. 메마른 갈대를 꺾어버릴 듯 휘돌던 바람도 어느 샌가 잠잠해졌다. 황량한 나뭇가지에 걸린 하늘은 차갑지만, 휑뎅그렁한 논과 밭의 흙빛은 아직도 싸늘하지만 저수지와 하천의 얼음을 깨뜨리며 봄은 오고 있다. 온전한 마음을 비끄러뜨리던 슬픈 바람에서도 이젠 봄 냄새가 난다.

겨우내 매섭게 불어닥치던 바람이, 없이 사는 사람들의 가슴을 매몰차게 휘젓던 그 슬픈 바람이 조만간 언 땅을 녹이고 목련과 개나리의 꽃잎을 살찌울 것이다. 농부들의 구릿빛 목덜미를 따라 숭고한 땀방울을 흘리게 할 것이다. 또 한번의 겨울을 났으니 삶과 세상은 지난겨울의 추위만큼, 그 차디찬 시련만큼 성숙해지리라. 그때가 되면, 그래, 그때가 되면 2003년의 봄은 2002년의 봄보다 더 아름다우리니...

오라 해서 오는 봄이 아니듯이, 녹이려 해서 녹는 눈이 아니듯이,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은 자연스럽게 밀려온다. 그 흐름이 시간인지, 역사인지, 그도 아니면 신의 섭리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여기까지, 혹은 저기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막고 있는 둑을 자연스럽게 허물어뜨리길 소망할 뿐이다. 진정한 ‘우리’라는 이름으로 노래부를 수 있는 날을 고대할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전, 합덕대건노인대학의 창립과 함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만든 ‘작은 카네이션 모임’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결성됐다. 봄을 고대하는 겨울산의 간절한 소망이 아니더라도 봄은 오는 것처럼 삶의 끝을 걷고있는 노인들의 힘겨운 걸음이 어쩌면 ‘작은 카네이션 모임’을 결성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우연일까? 입춘을 하루 넘긴 지난 5일 13년 동안 줄곧 ‘작은 카네이션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영자(합덕읍 운산리, 61세)씨를 만났다.

기다림이 힘이 되는 이유

지난 1993년 9월4일, 안영자씨를 비롯한 ‘작은 카네이션 모임’은 “합덕지역의 홀로 살고 있는 무의탁 노인들에게 사랑을 나누자”는 서금구 합덕대건노인대학 학장의 제의에 만장일치로 동의하고 도시락나누기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합덕읍사무소로부터 독거노인 70명의 자료를 제공받아 일일이 방문해 대상자 30명을 선정한 후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주1회 매주 금요일 ‘작은 카네이션 모임’은 정성 들여 마련한 도시락을 들고 독거 노인들을 방문했다. 합덕대건노인대학의 학생들이 후원해주긴 했지만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후원금이 부족해 이웃에서 쌀이나 음식들을 얻기도 하고 회원들이 주머니를 털기도 했죠. 작은 카네이션 모임 회원들이 직접 밥과 반찬을 준비했어요. 일주일에 단 한번뿐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정성을 다했어요. 영양을 생각해서 고기와 생선은 꼭 곁들였구요, 따뜻한 국도 꼭 챙겼어요.”

자원봉사자들을 반길 수도 있으련만, 허름한 곳에서 아무런 도움 없이 살고 있는 독거 노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 못마땅함은 오랜 외로움과 고통이 빚어낸 몸짓이었다. 그러나 매주 거르지 않고 계속되는 도시락 나누기 봉사의 한결같은 모습은 노인들의 시큰둥함을 기다림으로 바꾸었다. 자신들이 바꾸어놓은 그 기다림이 그녀와 회원들에겐 가장 큰 힘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밥 한끼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노인들을 바꿔놓은 것은 따뜻한 마음의 위로였겠죠. 굶주림에 지친 힘겨운 생을 견뎌왔고 또 다시 힘겹게 생을 마감하고 있는 노인들의 근심과 걱정에 찌든 얼굴이 밝은 얼굴로 변하는 것을 직접 보았죠. 그 밝은 얼굴에서 오히려 우리들이 많은 것을 얻었는지도 몰라요.”

기다림은 희망의 기미이기에, 무력하게 죽음의 그림자에 덮여있던 노인들에게 비로소 작지만 소중한 희망이 자리잡았기에, 그녀의 말처럼 그것은 아름다운 변화였다. 정성스런 밥 한 끼에 담겨있는 따뜻한 마음의 위로가 빚어낸 숭고한 변화였다.

그녀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역할, ‘광대’

그녀의 나이 이제 예순 하나다. 지금은 예사롭게 입에 담지만 ‘봉사’라는 말이 ‘인터넷’이란 말처럼 생소했던 그때 도시락을 싸고 독거노인들을 찾던 것이 마흔 여덟 적 일이었다.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는 그녀. 이제 그녀도 환갑을 넘겨 노인 축에 든다.

도시락 봉사 외에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은 하나 더 있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그 역할은 노인들의 ‘광대’가 되는 것이었다. 뚱딴지처럼 광대라니? 그러나 그 말엔 지금껏 계속해오고 있는 역할에 대한 그녀의 꾸밈없는 깨달음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서금구 학장님의 권유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러 강좌를 들었어요. 그런 후에 레크레이션 담당으로 합덕대건노인대학의 학생들 앞에 서게 됐죠. 지금도 게임, 포크댄스, 노래 부르기, 진흙 만들기, 종이 접기, 그림 그리기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언뜻, 선생이란 단어가 떠오를지 모르겠지만 저는 말 그대로 광대예요. 노인들을 즐겁게 만드는 게 목적이니까 그게 바로 가장 적당한 표현이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그녀가 얻은 해답은 참으로 간단하다. 교육이나 문화적인 혜택을 못 받고 자란, 먹고사는 문제에만 참담하게 매달려와 이제 황혼에 닿은 노인들에게 가장 유익한 것은 즐겁게 노는 게 최고란 결론이었다. 놀이는 비단 어린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국가경제부흥의 기치 아래 손끝이 검어 닳아질 정도로 땅을 일구다 정작 자신의 삶은 희생된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도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놀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광대’ 역할도 즐겁게 노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름다운 동행, 그리고 숭고한 여정

실은, 취재를 하기 전 그녀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신문에 나올 건더기가 있냐는 것이었다. 결국은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꼬치꼬치 캐묻고 더듬더듬 흘러나오는 말을 주워섬길 수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사진을 찍기 전 또다시 실랑이가 옥신각신 오고갔다. 사진은 뭣하러 찍느냐며 대뜸 싫은 기색이었다. 억지로 카메라 앞에 세워놓고 나니, “이럴 줄 알았으면 제대로 차리고 오는 건데...” 이랬다. 풋,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지만 그녀의 말엔 아직 시들지 않은 여성성이 숨어 있었다. 데면데면한 모습으로 남 앞에 보여지기 싫어하는 성정은 환갑을 넘겼으되 아직 여성을 버리지는 못했다는 말 아닌가. 돌려 생각하면, 그녀의 아쉬움은 젊다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그녀가 젊은 이유는 지난 세월에 있는 듯했다. 억지였다면 지난 13년 동안 도시락 봉사와 노인대학의 레크레이션 담당을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노인들을 위한 일이었지만 그녀 자신이 즐겁고 행복했을 터였다. 그랬으니 그녀가 생각하기에 별 것도 아닌 일이었고, 그녀가 생각하기에 광대놀음이었고, 그녀가 생각하기에 신문에 나올 건더기가 없었던 일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젊어 보였던 것이다.

지난 2000년 4월부터 도시락 나누기 봉사는 당진군의 지원을 받아 주 5회, 40명으로 확대됐다. 처음 도시락 나누기 봉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배달된 도시락 수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숫자다. 그녀는 힘이 닿는 한 계속 봉사를 하겠다고 말한다. ‘작은 카네이션 모임’과 그녀의 아름다운 동행, 그리고 도시락 나누기 봉사의 숭고한 여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희철 기자 hclee@dj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