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대 희
당진산악동우회 회장
산 그림 첩첩한 조망제일의 명산 덕유산(德裕山. 1614m)은 대간 상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장쾌한 산줄기는 남으로 높게 솟은 봉우리가 남 덕유산(1507m)이요, 바로 앞에 솟아오른 봉우리가 백암봉인데, 이 봉을 기점으로 방향을 틀어 동으로 빼재와 삼봉산을 향해 뻗어나가며 정작 정상인 향적봉은 대간으로부터 16km 후미에 위치해 있다.
덕과 너그러움으로 펼쳐진 덕유산은 크게 향적봉 남덕유 구역과 거칠봉 구역, 적상상 구역으로 나눌 수 있으며 남도의 정취가 듬뿍 담겨있는 우리 나라 삼대 설산이다. 또한 지리산, 설악산과 더불어 삼대 종주코스의 하나로 1975년에 국립공원 10호로 지정되었으며 2도 4군에 걸친 방대한 산세가 부드러움을 자랑하는 풍만한 산이다.
옛 선인들은 아주 깊고 깊은 첩첩산중을 가리켜 무주구천동이라 하였으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용어규범으로 자리한 그 말이 이 곳 구천동 계곡을 가르킨다. 지금도 심산유곡의 대명사로 우리들 가슴에 자리하고 있으며 청량함은 28km에 달해 그 명성과 함께 옥 줄 같은 경관을 이룬다.
이 땅에 명산치고 이만한 산 그림이 중첩한 곳 없으랴마는 덕유산은 사뭇 다르다. 동쪽으로 중첩한 산릉의 교태가 여느 산보다도 유다르다 할 수 있으며 뒷산 능선이 앞산으로 솟아오른 산릉은 마치 구름 위에 파도가 밀려오는 듯 몽글몽글 펼쳐져 시원스러운 장관을 이룬다. 봄이 되면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이 꽃밭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과 저녁 노을을 맞이하니 흔히들 색채의 마술사라 부르는 아름다운 산이다.
그러나 이 산은 여느 산들과 달리 하루 코스로는 약간 벅찬 듯한 19km에 달하며 겨울 산행이 아니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산이다. 설국의 나라 덕유산은 한없는 선경으로 다가서며 백설이 두텁게 뒤덮인 8㎞의 임도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 소리로 심설의 소소함을 느끼게 한다.
계곡따라 굽이굽이 산등을 돌아서니 들머리에 신라 신무왕때 백련선사가 창건했다는 천년태고의 고찰 백연사가 숙연한 모습으로 다가서며, 사찰 좌측의 계곡을 따라 들어서니 등산로는 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등 토종목들이 총총히 들어서 있다. 깊은 산의 심오함과 소나무 하나 없는 숲은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계곡의 둥근 바위는 봉곳봉곳 흰눈에 쌓여 제 모습을 잊어버리고 청유는 계곡을 휘감아 돌아서다 둥근 소와 담을 만나 그 모습을 드러내며 물빛이 너무 푸르니 심산유곡의 정취를 더욱 실감나게 한다.
온 산은 흰 모피로 두터운 옷을 입은 듯하며 등산로는 눈 속에 묻힌 소로가 이어진다. 잎 떨군 실가지 사이로 가늘게 새어나온 햇살을 받아 청초하게 반짝이는 산 죽은 해맑은 아이의 눈동자를 보는 듯하며 그 길은 어느 이름없는 동굴 앞에 이른다. 무언가 특이함에 동굴 속으로 들어서니 천장 바위 틈새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석회석 동굴의 종유석과 같은 아름드리 고드름을 만든다. 땅에서 솟아오른 것은 봉곳하고 천장에 매달린 것은 뾰족하니 영롱한 그 빛은 현란한 수정을 보는 듯 오직 겨울철에만 볼 수 있는 신비감이 감도는 경관이다.
동굴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급경사는 대간 상의 삼대 고봉다운 진면목을 보여주며 눈이 소복이 쌓여 참호처럼 느껴지는 등산로는 힘겨움의 연속이다. 동굴에서 한시간 반 정도 올라서니 백암봉(白巖峰)이다. 저 멀리 남 덕유산이 깃발처럼 높게 솟아 있고 연능들은 길게 향적봉을 향하며 저 멀리 동쪽과 남쪽 산으로 산 그림 중첩한 풍광은 조망 제일이라는 용어가 실감나는 장관을 이룬다. 또한 북으로 하얀 흰눈에 뒤덮인 향적봉이 파란 하늘 위에 시원스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은 아무나 들오올 수 없는 특별한 장소처럼 느껴지며 철쭉 군락과 주목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어우러져 있다. 주목은 청초한 빛을 띄고 가지에 흰눈을 얹은 채 유난히 검푸른 빛을 발하며 뭇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경관이 마치 선경처럼 느껴진다. 덕유산을 덕이 많은 산이라 부르는 이유가 이 곳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할 정도로 다채로움이 느껴지는 고즈넉한 능선이다.
속세와 단절된 듯한 약간 봉곳한 능선에 올라서니 정상이 한 눈에 들어오며 주목나무가 모진 설한풍에 애처롭게 검은 맨살을 드러내 보인다. 백설이 만연한 산장 위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니 쾌청한 날씨지만 스쳐가는 바람은 은은하고 매섭다. 그러나 그보다도 북쪽 하늘의 실루엣 장관이 먼저다.
명산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두루 겸비한 산은 사방으로 탁 트여 막힘없이 시원스러우며 능선마다 부드러운 흰 빛 선을 긋고 계곡을 향해 그 여맥을 묻는다. 오늘따라 산은 한없는 관대함을 보여주며 그 동안 잿빛 안개에 가려 원경의 조망을 방해했지만 그 허탈감을 한순간에 잊을 수 있는 풍광에 회원들 모두가 흐뭇해 한다. 산은 높을 수록 일기 변화가 심하며 그 변화 속에서 경치 또한 다양한 형태로 다가서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