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량의 어머님 사랑, 95세를 1기로 승천

지난 5일 저녁 9시경 갑작스런 비보의 전화가 휴대폰을 울렸다. 황당스런 음성으로 장형은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편찮아 누워 계신 어머님께 흰죽을 떠 잡수시도록 하고 상경한 뒤라 불안해서 고향인 당진에 내려가던 중이었다.

비보를 접한 뒤 고향을 향해 질주하면서 셋째 아들인 내가 어머님으로부터 받았던 가르침과 그 어른의 신앙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었다.

95년의 생을 마감한 나의 어머님 고 김사예 권사님은 젊어서부터 새벽기도와 성경 읽기를 쉬지 않으셨다. 2~3개월마다 집에 가서 어머님의 방에서 잠자다 보면 새벽 3시나 4시경에는 반드시 침상에 앉으셔서 아들 넷, 딸 넷의 후손까지 일일이 기도해주시고 아침식사가 끝나면 성경 읽기를 생활화 했다.

고 김 권사님의 후손으로 장남 이재룡(74), 차남 재국(68), 셋째 사위 박효우(66)씨가 장로이다. 모든 자손들을 기독교화 했으며 8남매 자녀가 모두 생존해 있다. 공휴일인 5일 오후 5시경 승천하셔 7일 장례를 모시니 그간 일기는 비가 많이 내려 농사일을 할 수 없는 일기였다. 운구하는 시간만 비가 멈춰 불신앙 조문객들도 “이 할머니는 틀림없이 천국 가셨다”라고 모두 이구동성으로 감동을 주었다.

또한 고 김사례 권사님은 효심이 지극해 인근 시아버님의 묘소도 자주 찾아 잡초를 제거해주며 노구를 이끌고 남들이 상상 할 수 없는 효심을 보여줬다.

생존시 위와 같이 생활한 고 김 권사님은 당진·송산중앙감리교회 서석근 목사로부터 성경통독을 했다는 노력을 인정받아 예배상(禮拜床)을 받기도 했다. 지난 4월28일 가내목욕실에서 어지럽다고 병이 발병 지난 5월 5일 발병 7일만에 승천하였으므로 병 뒷바라지를 담당해야 할 자손들에게도 어려움을 주지 않고 본인도 육체적 고통을 짧게 당하다 승천하셨다. 모두들 복인(福人)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셋째아들로 1년에 7~8회 방문할 때마다 용돈을 떨어지지 않게 드리면서 현재까지 지내왔고 늦가을 찬바람이 불면 따뜻한 내복을 입도록 하며 사후에 후회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정성을 들여왔다. 십계명 제오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고 효는 백행의 지본(孝而百行之本)이라 했으며 충효자는 천하일등인(忠孝者天下一等人)이라 했다.

그러나 ‘더 잘해드렸으면’하는 생각이 솟구쳐 오르며 늙으신 어머님의 활동모습만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있다.

지난 4월 28일 어지럽다고 누우면서 ‘나는 간다 너희들 잘 있어라!’ 외치신 뒤 영영 회복치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올라 가신 어머님은 영원한 평안을 누리고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