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은 백성들의 생활을 몸소 느껴보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잠행(潛行)하기도 했다고 한다. 급과 역할은 바뀌었지만 요즘도 단체장들이 소소한 모임을 찾아 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민원을 직접 듣는 일은 중요하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단체장들로 인해 행사의 내용이 바뀌거나 프로그램에 영향을 주는 ‘주객전도(主客顚倒)’는 안 된다. 그 옛날 나랏님이 ‘임금 행차’가 아닌 ‘잠행’을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주객전도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도 깃들여 있다.
지난달 27일 어머니 테니스대회가 열렸다. 테니스 동호인, 특히 가정이 있는 어머니들이 주축이 돼서 충남도내 각 시·군별로 모인 이 자리는 지역별 교류를 통해 기량을 닦고, 사회활동이 비교적 활발하지 않은 어머니들이 모인 대회라 다른 어느 대회보다 뜻 깊었다. 의미 자체로 충분히 뜻깊은 이 대회가 개막식장에서 ‘삐걱’거린 것은 군수와 국회의원 등 단체장들의 일정에 맞추느라 무리하게 개막식 시작을 한시간 가량 늦췄기 때문이다.
주최측은 단체장의 일정이 잡힌 관계로 개막식 전에 경기를 진행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경기를 진행한 것은 일부 선수에 불과하다.
단체장의 격려가 꼭 개막식 자리에서 필요하지는 않다. 행사 중간에 방문해 잠시 격려하는 방식을 택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우리끼리’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행사에서 꼭 단체장이 참석해야만 ‘행사의 권위가 살아난다’는 생각은 이제 보기 좋게 뛰어 넘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