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마고지 전투직전에 월정리에서 찍은 사진.
▲ 백마고지 전투직전에 월정리에서 찍은 사진.

6.25 전쟁의 아픔을 경험하고 또한 참전과정에서 수류탄 파편이 목을 관통하는 바람에 심한 상처를 입어 지금까지 어렵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내고 있는 신평면 운정리의 김종진(74)씨. 실명한 눈으로 반갑게 맞이하던 김씨의 모습에서 아픔이 너무 길었단 탓인지 그 날의 처절했던 모습들이 느껴지는 듯 했다.

김씨는 21살 때 갓 결혼을 한 후 신혼의 꿈도 꾸지 못한 채 6.25전쟁이 터져 아내(한순자. 73)를 두고 군에 입대를 해야만 했다. 1953년 6월23일 밤 11시경 갑자기 포탄이 중대 전초진지 전면에 정신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중국군이 던진 수류탄 파편에 맞은 김씨는 다른 세병사의 부축으로 그 즉시 응급처치를 받았다. 만약 그곳에서 20-30분만 내버려두었으면 김씨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을 것이다.

“대대 구호소에 도착하자 중상이라 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소리를 뒤로한 채 구급차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파편이 목의 식도를 끊고 여기저기 박혀 어깨를 관통하면서 피가 목에 엉겨 붙어 숨쉬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웠죠”

김씨는 동두천 노르웨이 야전 병원에 도착한 후 수혈과 함께 본격적인 치료를 받았다.

“겨우 회복을 했지만 부상으로 오른쪽 눈이 실명하고 식도가 절단된터라 성대가 마비되어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파편이 목에서 어깨를 관통해 어깨에는 계란이 하나 들어갈 만큼 큰 구멍이 뚫렸습니다. 이런 볼품 없는 모습일지라도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했었죠.”

김씨의 아내 한순자씨도 남편이 군에 입대하자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길 간절히 빌다 병을 얻었다. 다행히 남편을 만났지만 변한 남편의 모습에 더 심한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남편과 함께 부산역 기차를 탔지유. 그런데 그 때는 군인인 남편과 함께 기차를 탈수가 없어 다른 칸에 각각 타고 있다 부산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남편은 부산역에 내리고 나는 부산진 역에 내려 또 다시 생이별을 할 뻔했었지유.”

한씨는 남편을 만나 큰 수술을 하고 난 후 건강을 회복해 6남매를 낳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정상적인 일을 할 수 없었던 김씨는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목소리는 겨우 조그맣게라도 나와 말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실명한 눈 때문에 길을 가다가도 제대로 구분이 안돼 유리에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김씨는 “우리 세대의 삶이 나의 자식들과 젊은이들에게 단지 무용담이나 전공감이 아닌 공유 할 수 있는 역사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김씨는 상이군경회 활동을 하면서 남은 인생을 값지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