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진 것이 많아도 노력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고 했다. 갖고 태어난 것은 별로 없지만 ‘노력’ 하나로 육십 평생을 일궈낸 사람이 있다. 바로 박두석(63) 회장.
고대면 당진포리 해창마을이 고향인 박씨는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 취업한 박 회장은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가난 때문에 포기했던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저히 학비를 댈 수 없어 2년 다니다 중도에 포기하게 된다. 그러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쳐 법무부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지만 월급이 너무 적어 그만 두고 법무사사무소에 직원으로 취직한다.
법무사사무소 일을 하면서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 회장은 온 열정을 그곳에 바치게 된다.
“그 당시에는 일요일도 모른 채 일했어요. 하루는 출근버스를 탔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별로 없더라구요. 그런데 출근시간이면 늘 나오던 라디오 프로가 있었는데 다른 프로가 나오잖아요. 그제서야 그날이 일요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웃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를 계기로 1978년에는 법무사사무소를 직접 운영하게 된다.
그는 쉰을 넘긴 나이에 경기대 법학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생 뽑는 조건이 ‘대학졸업이 인정될만한 자’로 되어 있어 대학을 중퇴한 박씨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자기 주변을 조금씩 정리해가며 노후를 생각할 나이에 이런 일을 벌인 이유에 대해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전문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법률에 대해선 어느 누가 물어봐도 막힘이 없을 정도로 알아야 한다는 그 신념 하나로 지금껏 살았던 것 같습니다.”
법무사사무소 일을 하면서 막히는 일이 있으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던지 간에 이쪽 저쪽 물어보며 일을 했던 박 회장. 그래서 그런지 법 뿐만 아니라 궁금한 것이 있으면 사람들은 박 회장을 찾는다.
“얼마 전엔 아는 사람이 전북 부안으로 전출간 사람을 찾고 있는데 전화번화를 알고 싶다는 거예요. 너무 황당했지만 우선 전출주소를 아니까 주소지에 있는 면사무소로 전화해 그 동네 이장댁 전화번호를 알아내 물어보면 된다고 대답하니 ‘그런 방법이 있었지’하며 고맙다고 한 적도 있어요.”
맨주먹으로 시작해 지금은 빌딩 한 채를 갖고 임대업을 하고 있는 박 회장은 1972년도에 홍순애 여사와 결혼해 1남2녀를 두었다. 현재 해창에는 아버지 박희군(90)·어머니 이석준(85)씨가 생존에 계시다.
그는 1999년부터 재경고대면민회 회장직무대행을 해오다 작년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