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신성대학 행정실무과 교수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경제사정 악화로 실업자가 늘어나고 생활고에 시달려 자식들과 동반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며 카드 빚에 찌들려 범죄행각을 벌이는 사람들이 출현하는 요즈음 필자가 속절없이 가져보는 의문들이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만년에 쓴 일종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세 가지 질문’이란 단편에서 이러한 질문과 함께 해답을 주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행하는 좋은 일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라고......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과연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고 인정될 수 있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질문의 답에 동의를 하지만 현재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이러한 대답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다름 아닌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카드 빚에 몰리고 직장을 잃어 당장 돈 나올 곳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도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라도 붙잡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있는 사람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도, 나와 함께 있는 사람도 짐이 될 뿐이며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하는 좋은 일도 의미없는 것이다.

그러면 희망부재 또는 자포자기 상태에 대한 책임은 과연 당사자에게만 있는 것인가?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는 절대적으로 무죄인가?

물론 1차적인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겠지만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도 방조자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갈라놓고 있지는 않은가? 또 지나치게 한정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만족해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속성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타적인 경향도 있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이타적인 속성이 전혀 없다면 세상은 살 맛나지 않고 우리는 동물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복지국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의 경우 헌법 제34조 2항에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연 국가는 이러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캐나다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주선하는 홈쇼핑상품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부당국자들은 알아봐야 할 것이다. 비단 그것은 자녀들의 교육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는 기본적인 의무에 충실하여 국민들의 복지를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여 특히 절망의 끝에 서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존립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에서 삶의 의의를 생각하며 ‘잘사는 삶’이란 지금 이 순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 주변의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인생은 가치있고 빛나는 것이라는 생활속의 진리를 발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