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훈훈한 정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당진이 좋습니다.”

지난 2001년 당진경찰서장으로 부임해 1년 동안 재직하다 근무지를 서울로 옮긴 김성훈(42) 서장. 김 서장은 당진을 떠난지 횟수로 2년째임에도 아직까지 당진을 잊지 못하고 있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김 서장은 “어린시절 추억을 생각하면 늘상 도시냄새가 났다”며 “그래서 그런지 시골에 대한 동경과 갈증이 있었다”고 말한다.

“저는 그랬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진정한 의미의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는지 처음에는 흙 밟는 것을 불편해 하던 형준(초등6)·채연(초등4) 남매도 며칠 지나지 않아 곧바로 적응을 했다고 한다.

김 서장은 당진에서 근무할 때 가족의 주민등록을 옮기고 아이들을 탑동초등학교에 다니게 했다. 당진사람들도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는 판국인데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당진에 가고 싶다고 졸라요. 이번 휴가 때 한번 갔다오려고 했는데 너무 바빠 휴가가 취소되는 바람에 아이들이 실망을 많이 했죠.”

아무 연고도 없는 당진을 이제는 김 서장 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당진사람들만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여기에서도 제 고향이 당진인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요. 워낙 당진 얘기를 많이 하다보니까...”

당진주민들이 당진항 지정 문제로 항의집회 하러 상경했을 때 추운 날씨에 쌍화탕이 식을까봐 따뜻한 물에 담가 가지고 찾아갔던 일, 국회로 항의하러 왔을 때 음료수를 사들고 찾아갔던 일이며 그의 ‘당진사랑’은 끔찍했다.

“지금도 가끔 당진에서 먹었던 음식이 생각난다고 하면 싸들고 오시는 분들도 있고 당진쌀이 맛있다며 자그마한 포대에 담아가지고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김 서장은 당진경찰서에 재직시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교통사망사고를 42%나 줄인 사실을 꼽았다.

“밤에 직접 도로를 걸어봤습니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도로폭과 갓길은 비좁고 미관상 심어놓은 꽃들 때문에 보행자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있었으니까요.”

김 서장은 우선 선형개량사업, 도로갓길 넓히는 사업을 유관기관의 도움을 받아 집중적으로 추진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예다원 앞에서 호서고 방향으로 가는 길을 막은 것도 사고가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었다고.

“주위에서 어렵다고 반대하더라도 무조건 하다보면 됩니다. 다만 전시행정이 아닌 정확한 진단 아래 발로 뛰어 구체적인 처방을 내려야 하는 것이 중요하죠.”

주민복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하는 김 서장에게서 젊은 서장 특유의 패기가 뿜어나온다.

항상 ‘주민과 함께 경찰과 함께’라는 말을 슬로건으로 내세운다는 김 서장은 경찰행정도 모든 걸 주민입장에서, 주민 눈높이에 맞춰 실천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문제를 주민입장에서 바라보면 간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