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가 끝난 겨울들판, 한해동안 곡식을 키워 내주고 편안히 휴식에 들어간 논배미에는 볏짚이 잘려나간 흔적들만 동그마니 앉아있다.

바람이 한층 쌀쌀해진 오후에 박근수(46, 석문면 교로리)씨의 집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흙으로 빚은 앙증맞은 인형들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잔디가 깔려있는 앞 뜰에는 각양각색 인형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었다. 나무로 지은 별채와 하얀 색이 유독 눈에 띄는 2층 건물이 좁게 올라가 있었다.

산쪽에 붙어있는 작업장으로 들어서자 흙내음이 구수하게 풍겨져 나왔다. 우리는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난로를 사이에 두고 차 한잔을 깊게 마셨다.

박근수씨와 차인원(42)씨는 4년 전 당진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한 해 동안의 삶을 짚풀로 엮어낸다.

박씨가 짚풀공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5년 전쯤의 일이다. 현재 대산중학교 미술교사인 그는 인하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그림에 짚풀을 짓이겨 작업하기도 했던 그는 본격적으로 짚풀공예를 하기 시작했다.

들판에 자라나는 벼나 보리를 보면 ‘예쁘구나’하는 그런 느낌을 넘어서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는 박씨는 짚을 보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씨 뿌리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남은 자기 몸은 여러가지의 다른 모양으로 변해 사람과 함께 부딪치며 살아가다 종국에는 소멸되는 것. 그렇게 조용히, 그렇게 흔적없이 썩어지는 것이 사람의 생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박씨는 그동안 만져본 재료 중에서 짚풀만큼 친근한 재료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짚풀로 작업을 할 때는 절대로 장갑을 끼고 하지 못한다. 맨 손으로 직접 짚을 만지면서, 사람의 피부와 짚의 피부가 서로 부벼지면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짚풀공예를 하기 위해서는 짚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꾸준히 이 작업을 계속해서 손에 익어야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짚풀로 만든 작품이 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짚을 물에 적셔서 사용해야 한다. 박씨는 손에 와닿는 차가운 느낌이 싫기는 커녕 사람 살이 닿는 느낌이라며 짚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박근수·차인원 부부는 당진에 오기 전 경기도 안양에서 살고 있었다. 박씨가 거기에 살 때는 보리를 몰랐다고 한다. 처음 보리를 보았을 때, 한 겨울에 파릇파릇한 것이 신기하게만 생각되었는데, 지금은 보리짚도 그에게 훌륭한 작업재료가 되고 있다. 보리짚은 장신구 등의 작품을 만드는데 쓰기도 하지만 박씨는 이를 이용해 전혀 새로운 느낌의 작품을 만들었다. 보리짚으로 문양을 만들어 거기에 염색을 시도한 것이다. 여러 번의 실패를 본 후 보리짚에 맞는 염료를 찾았는데 완성된 작품을 액자에 걸어놓고 보니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되었다.

박씨는 베갯모의 양쪽 면에 보릿대로 문양을 만들어 넣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생활 속에서 이러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또 활용할 수 있었던 우리 조상들의 미적 감각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만든 보리짚 공예는 베갯모 속의 문양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만들어 본 것이다.

박씨는 농촌으로 이사온 후 짚풀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배우려고 노력한다. 짚풀로 무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전국 어디나 달려가 배우고 온다는 그는 짚풀공예를 통해 동네 노인정에 놀러 오신 할아버지들과도 친한 사이가 되었다.

박씨는 서울에 있는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1년 정도 짚풀공예를 배운 적이 있다고 한다. 거기서 배운 30여 가지의 짚풀공예는 그러나 도심 속에서 배우는 것이라 한계가 있었다. 현장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만들고 다루는 것과는 큰 차이 가 있다는 것을 당진에 와서 직접 작업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짚풀로 만든 생활민구류들을 보고 배우면서 각 지방마다, 또 같은 지방이라도 사람마다 모양이나 만드는 방식에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집 근처의 노인정에 모인 할아버지들 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박씨는 그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지방마다 개인마다 생활방식이 똑같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짚풀을 이용해 생활민구류를 만들어 썼던 조상들의 지혜를 배우고 보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얼마 전 동네 초가집 지붕을 얹는데 가서 이엉을 엮고 용마름 만드는 일을 배워왔다고 한다. 박씨는 이것을 만들기만 하고 지붕에 얹을 줄 모르면 배워도 헛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짚풀로 만든 것들은 거의 다 일상생활에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인데 이를 활용할 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지붕 위에 올라가 작업을 하는 등 전과정을 모두 경험해 봤다며 뿌듯해 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해 놨다고 한다. 박근수씨는 앞으로 체험학습장을 운영하게 되면 이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아이들에게 기존의 짚풀공예를 변형시켜 수업시간에 가르치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교와 학부모님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박씨는 아이들에게 미술시간에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여치집이나 장신구, 냄비받침 등을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며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보여주기도 했다.

박근수씨가 공예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비단 짚과 보리짚 뿐만이 아니다. 왕골은 물론이고 띠, 부들 등 요즘에는 흔히 듣기 어려운 이름의 풀들도 공예의 좋은 재료로 요긴하게 사용된다.

띠는 볏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줄기가 1미터 가량 된다. 띠는 예전에 도롱이(비옷)를 만들어 쓰는데 사용했던 풀이다. 짚풀은 비를 맞으면 물기가 배어 금세 무거워지지만 띠는 비를 맞아도 물기가 흘러내릴만큼 윤기가 있어 비옷을 만들기에는 적격이다.

부들은 부들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개울가나 연못가에 주로 나며 잎이나 줄기로 자리나 부채를 만드는데 쓰인다.

이렇게 다양한 재료로 만든 작품은 짚신, 등구미, 삼태기, 달걀꾸러미, 도롱이, 새집 등 수십 가지가 넘었다.

이것들을 보관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작품을 쥐가 갉아먹기 때문인데 달걀꾸러미 속의 달걀은 벌써 빈 껍데기만 남아있었다.

주의를 요하는 건 작품 뿐만 아니라 작품을 만들기 위해 보관해 둔 짚풀도 마찬가지다. 짚풀공예를 하기 위해서는 길이가 긴 짚일수록 유리하다. 그래서 벼의 품종 중에서도 볏짚의 길이가 긴 것을 선호하는데 쥐는 어렵사리 마련한 짚풀을 칼로 자른 듯 쏠아놓는다. 길이가 짧아지면 볏짚은 그 쓸모가 현격하게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래도 당진에 와서는 주변에 농사짓는 분에게 부탁해 놔서 도시에서 살 때보다 볏짚을 구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당진으로 이사온 지 4년밖에 안됐지만 이들 부부는 농촌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차인원씨는 처음 이사왔을 때 손님들이 밤늦게 찾아오거나 묵었다 가는 경우가 많아 힘이 들었다고 한다. 이사 오기 전, ‘시골에서 생활하려 했던 것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는 그녀는 이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면 혹시나 하고 밖을 내다보며 기다려지기까지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아예 나무로 된 집을 한 채 지었다. 온 가족이 매달려 지은 집안 한 쪽에는 벽난로가 분위기있게 자리잡고 있었다. 집을 짓는 동안 가족 모두가 많이 힘들었지만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박씨 가족의 힘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한다.

이 집 뿐만 아니라 박씨는 전시관으로 쓸 건물도 틈날 때마다 꾸미고 있다. 2층으로 지어진 하얀색 건물에는 ‘짚토’라는 토속적인 이름을 붙였다. 아직 완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시간 나는 대로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어 연말이나 내년 봄 쯤이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단순하게 박씨가 만든 작품만을 전시하지 않고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던 것인지 한 눈에 쉽게 알게 하기 위해서 사람이나 소 모형을 만들어 전시함으로써 관람객의 이해를 도울 생각이다.

박씨는 이 공간을 전시공간을 구하지 못했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전시하지 못하는 작가들에게 빌려줘 볼거리가 더욱 다양한 전시공간으로 활용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들 부부의 집앞 뜰에서는 올 가을에 하우스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공연문화를 쉽게 접하기 어려운 농촌의 현실을 보고 ‘우리가 한번 자리를 만들어 보자’고 해서 열게 된 콘서트는 ‘너무 좋았다’는 평을 들었다며 앞으로도 1년에 한번씩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소란을 피우는 것 같아서 이웃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관람인원을 20명 정도로 제한하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후 공연을 했는데 마을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줬다고 한다.

하우스콘서트가 열렸던 이 공간에는 앞으로 박씨의 짚풀공예와 함께 도자기나 그림도 함께 전시할 생각이다.

집의 입구부터 마당 곳곳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토우(흙으로 빚은 인형)들은 차인원씨의 작품이다.

차씨가 도자기에 손을 댄 지 벌써 8~9년이 됐다. 그녀는 원래 수학을 전공했지만 아는 선배를 통해서 처음 도자기를 접한 후 잠시 쉬어보고자 시작한 일이 지금은 본업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재미도 있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더라구요.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배우려면 멀었어요.”

이미 도자기로 이름이 잘 알려진 고대면 성산리의 양광용씨에게 3~4년 정도 일을 배웠다는 그녀는 이 일에 대한 집념이 남다르다.

요즘에는 토우를 만드는 일에 푹 빠져있는 그녀. 풍부한 표정을 담고 있어 더욱 생동감있게 느껴지는 토우를 보며 남편 박씨는 요즘들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 같다며 은근히 자랑을 하기도 했다.

조상들의 얼과 슬기가 담겨있는 우리의 전통문화는 소중히 간직하고 보전시켜 나가야 할 것들이다. 박근수씨는 그 중에서도 짚풀을 이용해 만든 생활민구류를 택했다.

살아가는 동안 짚풀공예에 온 정성을 쏟겠다는 그는 앞으로 공예품을 만드는데서 더 나아가 짚풀 설치미술을 구상하고 있다.

짚풀이 사람과 가장 친근한 재료라고 말하던 차씨의 몸에서는 어느새 짚풀냄새가 구수하게 풍겨나오고 있었다.

뜰 앞까지 마중을 나온 박근수·차인원 부부를 보며 짚풀과 도자기만큼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