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사람이 죽어 마지막으로 가는 길을 닦아주는 사람이 있다. 죽은 이를 보내는 상여를 만드는 서용석(합덕읍 신촌리)씨.

건축업을 하던 그가 상여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1993년 당진군수와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 소장의 권유로 시작한 꽃상여 만들기. 지금은 당진의 유일한 꽃상여 제작자가 되었다.

상여는 우리의 전통문화

과거에는 사람이 죽으면 모두 상여를 이용해 장례를 지냈다. 그 상여가 가는 길을 따라 걸으며 죽은 이를 보냈고 이것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됐다.

하지만 요즈음 상여로 장례를 지내는 곳은 거의 없다. 시골에서 나이든 노인들의 장례를 지낼 때 간간히 상여를 쓰지만 장례예식장이 들어서고 매장 대신 화장하는 풍습이 자리잡으면서 상여를 보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가끔 TV에 나오는 상여의 모습을 보며 과거에 저런 것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할 뿐. 아마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상여 대신 관을 실은 영구차가 지나가는 광경을 더 많이 보았으리라. 그러나 상여는 우리가 보존해야 할 전통문화임에 틀림없다. 서씨는 그렇게 소리없이 우리의 문화를 지켜가고 있다.

어렵지는 않지만 잔손 많이 가

상여는 우선 체대가 세로로 지나간다. 그 길이는 6사람이 두 줄로 늘어서서 들어가야 하므로 제법 길어야 한다. 그 체대의 앞뒤에는 고정된 채 가로로 지나가는 홍골목이 있으며 고정되지 않은 채 가로지르는 홍골목이 5개가 더 지나간다. 그 다음은 베로 만든 긴 끈을 앞에서 뒤로 늘어뜨리고 앞뒤는 체대에 묶어 고정하며 홍골목 사이사이에 사람이 들어가 상여를 들 수 있게 한다. 양쪽 끝 4개의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체대 위에는 시신을 보관한 관을 고정한 다음 그 위를 꽃상여로 덮어 고정시킨다. 양쪽끝에 세운 기둥에는 천막을 덮어서 상여를 보호한다. 마지막으로 꽃상여를 종이로 만든 꽃을 사용해서 장식한다.

서씨는 이 모든 작업을 직접 손으로 한다. 나무로 된 틀을 짜고, 못을 박고, 꽃을 일일히 붙인다. 잔손이 매우 많이 가는 작업이다. 그렇게 하나의 상여를 만들면 서너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의 손으로 보낸 사람이 수백여명

지난 10년 동안 그의 손이 만들어낸 상여가 수백여개다. 손수 마지막 길을 떠나보낸 사람이 수백여명을 넘는 것이다. 그의 상여로 보내지는 사람을 일일히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특별히 기억하는 사람도 몇몇 있다.

그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10여년 전 이웃의 노인이 돌아가셨을 때 그의 손으로 상여를 만들었다. 지금은 다 잊혀진 과거의 기억이지만 친한 이웃의 마지막 길을 자신이 마련했다는 특별한 느낌은 아직도 남아있는 듯했다.

이제는 상여 보기 어려워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상여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그를 바쁘게 했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겨우 1~2개 들어온다고 한다. 원래는 동네의 노인회에서도 상여를 만들었지만 경제적 부담을 이기기 어려워 그만두고 말았다.

아직도 당진 곳곳에서 상여가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정식으로 배워 문화를 잇는 사람은 서씨 혼자 뿐이라고 한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경제적인 부담을 이기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크다. 상여의 소비가 점차 줄어들고 상여 제작만으로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만드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제는 시골 노인들의 소일거리가 되거나 아니면 보존해야할 문화가 된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

서씨는 겨우 1~2개만 의뢰가 들어온다고 해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상여는 사용처의 특성상 시간을 정확히 맞춰서 가져다 줘야 한다. 삼일장이나 오일장을 치르면 발상하는 날까지는 반드시 상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약속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그는 10여년동안 시간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그동안 상여만드는 일을 수차례 그만두려고 했으나 결국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아내(김영숙, 49)와 함께 상여를 만드는 그가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기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