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인해 변한 사람, 야생동물 보호에 앞장서

“날지 못하는 새는 죽을 때까지 돌본다”

“지난 96년도에 철원을 찾은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때 조류보호협회에서 그동안 데리고 있었던 독수리와 두루미를 한꺼번에 방사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멋있었다는 것보다는 ‘장관’이었다고나 할까요.”

“그전에는 새들을 ‘잡아먹는’ 사람이었는데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죠.”

‘새 사람’이 된 평범한 농사꾼

지난 1998년 창립된 한국조류보호협회 당진군지회. 철원에서의 경험 이후 이광석 지회장은 우선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한국조류보호협회 당진군지회를 만들었다. 지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가입인원이 15명이 있어야 했기 때문. 조류보호협회 중앙회에 지회설립 동의서를 제출하고 6개월의 실사과정을 거쳐 당진군지회가 설립됐다. 처음 15명으로 시작한 지회에는 환경보호와 야생동물보호에 뜻을 같이하는 회원들이 속속 가입해 어느새 70여명이 넘어서게 됐다.

지회 설립을 계기로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살아온 이 회장은 본격적인 야생동물 보호운동에 뛰어들었다.

새들의 지킴이 조류보호협회

당진군지회에는 덫에 걸려 있는 새들이나 총에 맞아 떨어진 새들에 대해 제보가 들어온다. 군청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제보가 들어오면 이 회장과 회원들은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에 나선다. 스스로도 ‘달리는 사무실’이라고 부르는 이 회장의 차에는 항상 무전기와 그물채, 피복장갑, 보호상자 등이 갖춰져 있다. 새들이 총에 맞거나 덫에 걸리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죽는 경우가 많지만 만약 살아있는 상태에서 제보가 들어오는 경우라면 재빨리 동물병원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25일 난지도에서 덫에 걸린 수리부엉이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 즉시 구조에 나섰다. 덕분에 바닷바람을 실컷 쐬서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지는 이 회장은 다친 새들이 발견되면 천연기념물 조수류 치료 병원으로 지정돼 있는 백동물병원(원장 백종열)으로 데려간다. 치료를 마친 새들은 이 회장이 잠시 데리고 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작은 새들이지만 위험하기도

새 중에도 독수리나 매 등은 맹금류라고 불린다. 이 새들은 다치더라도 발톱이나 부리로 사람을 다치게 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게다가 맹금류는 들쥐나 다른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과정에서 동물의 피나 세균이 발톱을 묻히기도 한다. 그 발톱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면 병균까지 함께 옮긴다. 이 회장은 전문가들도 쉽게 다루지 못하는 맹금류를 구하기 위해 강화피복장갑이나 그물채를 직접 구해서 가지고 다닌다. 맹금류를 구조할 때는 제보자나 주민들이 손을 대지 말고 이 회장이나 조류보호협회의 회원들이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당부한다.

“동물들을 만들질 때는 매우 세심하게 다뤄야 해요. 다쳤기 때문에 더 위험하지요. 어린 새끼라면 몰라도...”

다행히 지금까지는 사람이 다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새도 야생동물의 하나

이 회장은 새들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새에 미친 사람’이라고 할 정도지만 새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지는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지의 한 맥락일 뿐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조류보호협회뿐만 아니라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의 당진군지부 일도 같이 하고 있다.

야생동물들을 보호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야생조수들을 노리는 밀렵꾼이다. 이에 조류보호협회 회원 등 환경단체 회원 22명으로 구성된 밀렵감시단이 결성돼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넓은 지역을 매일 살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총을 사용하는 대신 덫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밀렵꾼을 잡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밀렵감시단은 지난 1년 동안 14명의 밀렵행위자를 적발하고 그 중 3명을 고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치료 후 새들은 방사하지만...

다친 새들을 구조하고 동물병원에서 치료하고 다시 데려와 잠시 동안 같이 지낸다. 그러다 새들이 기력을 찾으면 ‘방사’한다. 전에는 조류보호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홍보도 할 겸해서 방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부엉이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밤에 방사하는 것이 부엉이에게 가장 좋다. 즉 보여주는 행사보다는 실질적으로 동물들을 도와주기 위해 새들에게 가장 알맞은 시간에 방사한다. 그러다 보니 방사는 자연스레 이 회장의 몫이 됐다. 이 회장은 소란스러움을 피해 새벽에 혼자 조용히 새들을 날려 보내거나 밤을 이용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닌 정말 ‘새를 위한 행동’을 벌인다.

안타깝게도 새들 중에는 치명상을 입어 다시는 날 수 없게 된 새들도 있다. 날개에 총을 맞아 뼈가 으스러져 날지 못하게 된 청둥오리들. 그 새들은 이제 죽을 때까지 이 회장과 같이 지내야 한다. 우강면 신촌리에서 농사를 짓는 이 회장은 집 주위에 자그마한 새장을 만들어 날지 못하는 새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야생조수 지킴이, 환경지키이

이 회장은 야생조수들을 지키는 것이 곧 환경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만이 환경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지켜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는 눈에 드러나지 않게 자신의 신념을 묵묵히 실천해왔다. 조류보호협회와 함께.

그의 노력이 조그만 보상을 받는지 올해부터는 적지 않은 지원을 받게 됐다. 군청에서 주는 사회단체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외부에서의 도움도 전혀 없이 ‘새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 나름대로의 인정을 받아 뿌듯한 마음이 드는 듯했다.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밀렵이 가장 많다. 이 때문에 ‘밀렵철’이라고도 불린다. 이 시기가 지나면 밀렵도 어느 정도 잠잠해지기 때문에 이 회장은 잠시 ‘본업’으로 복귀한다. 농사철이 다가오기 때문. 하지만 그는 다친 야생동물들이 있다는 소식만 들려오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최근에 바뀐 그의 핸드폰 번호가 기억에 남는다. 010-8255-4119(빨리 와라-새 119). 다친 야생조수를 발견하면 언제든지 전화를 하라고 당부하는 이 회장. 새로운 핸드폰 번호가 나타내는 것처럼 그는 ‘준비된’ 새 전문가였다.

김기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