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악면 중흥리 출신 교포 한인사회봉사회 이정렬 이사장
4월18일 오전 캐나다에서 이민 한국인들을 위해 20여 년간 봉사활동을 해온 이정렬(60, 한인사회봉사회 이사장)씨를 만나기 위해 동생 이홍렬(54)씨 집을 찾았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이정렬씨가 기거하고 있는 송악면 중흥리 동생 집은 못자리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날도 동생 홍렬씨는 허벅지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모자로 햇빛을 가린 채 묘판을 내는 일에 분주했다. 이곳에서 이정렬씨의 캐나다 생활과 이씨를 떠나보낸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이정렬씨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이정렬씨가 1982년 ‘타향만리’ 떨어져 있는 캐나다 벤쿠버에 도착했을 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렁이를 잡는 일과 과일가게에서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는 것으로 이씨의 캐나다 생활은 시작되었다. 형 이갑수(68, 거산리)씨는 떠나는 동생을 막지 못했다. 부자나라에 가서 돈을 벌면 남다르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20여 년 동안 동생과 형은 자주 만날 수 없었지만 형의 생일날 그리고 가족의 기념일만큼은 꼭 챙겼다. 이런 동생이 캐나다에서 자리를 잡고 같은 처지의 한인을 돕는 봉사단체의 수장이 되어 돌아왔을 때 형의 기쁨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이정렬씨가 몸담고 있는 한인사회봉사회는 캐나다에 사는 한인들이 이민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캐나다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인증 받은 봉사단체이다. 이곳에서 이씨는 지난 20년 동안 생활에 필요한 서식들을 대신 작성해 주는 것에서부터 직업상담 그리고 국가간 문화차이로 생기는 가정불화에 대해 상담하는 일을 해왔다. 이 씨는 캐나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이야기들이다.
한국에서 부도를 내고 도피를 목적으로 캐나다에 온 가족들이 있었다. 먹고 사는 대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교육이 문제였다. 캐나다에선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은 학교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편법이긴 하지만 난민신청을 하게 되면 2~3년의 심의기간이 걸리더라도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 난민신청과 관련된 서류작성을 해줘서 잠시나마 마음놓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도 한인사회봉사회였고 이정렬씨였다.
다음 경우는 캐나다로 유학 또는 여행을 와서 캐나다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이민자를 도왔던 경우이다. 이같은 경우 3년 동안 불법체류를 하게 되면 이민신청을 할 수 있는데 이때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이곳에서 얼마나 일했느냐?’ 즉 은행의 잔고가 얼마냐의 문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법체류자들은 신분상 돈벌이를 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이씨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사비를 털어 잔고를 채워줬고 이들의 정착할 수 있도록 직장까지 알선했다.
캐나다에 온 한국 이민자의 가정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문화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가정불화이다. 캐나다 사회에서 가정폭력은 매우 엄격히 규제된다. 가정폭력에 관한 신고가 접수되면 무장경관이 검거에 나설 만큼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캐나다의 가정생활에서 가부장적인 한국의 남편들은 아내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불만을 표출해 부부간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급기야 폭력까지 행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아내가 경찰에 신고해 남편이 연행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사태가 해결되어도 ‘어떻게 나를 경찰에 신고할 수 있어!’라는 부인에 대한 앙금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일로 인해 고통을 받는 가정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캐나다의 국가적 특성을 설명하고 조정하는 역할까지 이정렬씨는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왔다.
100% 무료로 하는 것이 진정한 ‘봉사’
한국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시민사회단체 사람을 만났는데 이정렬씨가 느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우선 ‘허세’를 부리는 일이 많다는 것이 한가지고, 다른 하나는 봉사의 참된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점심 한 끼니도 간단하게 해결해도 될 것을 횟집에 가야 직성이 풀리고 명목상 봉사단체임에도 통역을 하거나 다른 도움을 줄 때 돈을 받는 경우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정렬씨가 말하길 ‘진정한 봉사’란 상점의 차림표처럼 무엇을 할 때는 비용을 받지 않고 어떤 일을 할 때는 비용을 받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일들이 100% 무료여야만 진정한 봉사라고 말했다. 따라서 한국의 시민사회 단체들은 ‘봉사단체’, ‘친목단체’, ‘후원회’ 중 어떤 정체성을 갖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20일 기특하기만 한 형제을 다시 타향만리 캐나다로 보냈지만 이정렬 씨의 형제들은 슬프지 않다. 이 씨의 도움으로 인해 캐나다에서 행복해질 한국인과 가정을 생각하면 결코 슬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수씨와 홍렬씨는 행복하게 이정렬씨를 캐나다에 보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