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송영진 의원 지지표 일부 김 당선자로 이동

이번 총선에서 김낙성 당선자와 박기억 후보는 그야말로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 송악과 석문 등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우세를 보였던 김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정치신인인 박 후보에게 상당수 읍·면에서 고전했으나 당진읍과 합덕읍, 정미, 대호지, 면천 등에서 우세를 지켜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박 후보는 출신지역인 신평을 비롯해 송악, 송산, 순성 등에서 우세를 보였으나 나머지 지역에서의 열세를 만회하지 못했다.

<당진읍> 전통적 자민련 우세 지역

당진읍 전체 투표구에서 김낙성 당선자가 박기억 후보를 4.4% 가량 앞섰다.

특히 김 당선자는 제8투표구(남산·계성리)에서 무려 226표(11.9%)를 앞서면서 가장 큰 표차를 기록했다. 이 투표구는 지난 2000년 총선에서도 당시 자민련 소속 김현욱 후보가 11%의 큰 표차로 이겼던 지역으로 목화아파트 등 푸른병원 부근의 신흥 주택단지이면서 비교적 토착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도 김 당선자는 이 투표구에서 당시 황규호 후보를 140표 이상 앞선 바 있다.

그러나 당진읍 제6투표구(원당리·수청2리)와 제7투표구(시곡리)에서는 박 후보가 각각 8.9%, 9.4% 앞섰다. 이 투표구는 주공아파트와 청구아파트, 현대아파트 등이 밀집한 지역으로 열린우리당에 호의적인 젊은층이 비교적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합덕읍> 과거 송 의원 지지표

김 당선자에게 이동

합덕읍에서 김 당선자는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 이어 우세를 지켰다.

지난 2002년 당시에는 이 지역 출신인 민영근 당시 미래연합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추격을 당했었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이 지역 출신인 무소속 신현영 후보의 출마에도 불구하고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제2투표구(교동·하운리)를 제외한 전 투표구에서 앞섰다.

제2투표구에서는 박 후보가 84표 가량 앞섰다.

합덕읍은 지난 2000년 총선 당시 민주당 송영진 후보가 자민련 소속 김현욱 후보를 8%가량 앞섰던 지역이다. 지난 2000년 당시 민주당 송영진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이번에는 김낙성 후보에게 표를 던진 셈이다.

<석문면> 석문공단 방치 등

불만으로 박 후보 우세

석문면에서 박 후보는 김 당선자를 289표의 비교적 큰 표차로 앞섰다.

이 지역은 지난 2002년 지방선거 당시에도 한나라당 황규호 후보가 김 당선자를 52표차로 앞섰으며 2000년 총선에서도 민주당 송영진 후보가 자민련 김현욱 후보를 2%차로 앞선 바 있다.

이 지역은 석문국가산업단지 조성 이후의 장기 방치 및 재산권 행사의 제약과 당진화력 증설 등으로 인한 불만이 쌓여 처음부터 김 당선자와 자민련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대호지·면천·정미>

김 당선자 몰표 얻어

대호지·면천·정미에서는 김 당선자가 비교적 큰 표차로 승리했다.

이 지역은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도 김 당선자에게 몰표를 줬던 지역이다.

특히 면천면의 경우 2000년 총선에서 이 지역 출신 송영진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송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이은 구속과 부인인 유정숙씨의 열린우리당 경선탈락에 반발해 박 후보가 아닌 김 당선자에게 표가 몰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신평면> 박 후보 출신지 588표

압도적 지지

신평면에서 박 후보는 김 당선자를 무려 588표차로 앞섰다.

서정초와 신평중, 신평고 출신인 박 후보에게 신평의 유권자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특히 초·중·고교를 모두 신평에서 다닌 경력으로 인해 모교의 동창들이 선거운동에 발벗고 나서 박 후보에게 큰 힘이 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최근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신흥 개발지역으로 신세대 아파트와 단일 아파트 등을 중심으로 젊은층이 비교적 많은 것도 열린우리당 소속인 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송악·송산면> 신흥 발전지역

박 후보 우세

송악면과 송산면에서 박 후보가 각각 5.4%, 3.8%를 앞섰다.

이 지역은 각종 공장이 입주하는 등 최근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으로 박 후보의 출신지역인 신평과 산업적인 연관이 깊은데다 같은 당 소속인 김천환 군의회 의장 등의 활약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