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기념 인터뷰 녹음의 깊이가 깊어져가는 6월 충령사, 전흔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전쟁 유가족 중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전몰군경유족회를 이끌고 있는 임명택(56)씨. 임명택씨에 의하면 “1950년 이후 당진지역 출신 전사자는 밝혀진 것만 경찰 30여명을 비롯해 467명 가량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네 자녀와 부인을 뒤로하고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로 나갔던 임명택씨의 아버지 임종호(하사, 3사단 수색대대)씨는 낙동강 전투에서 수류탄을 맞고 전사했고 아이들과 함께 남겨진 어머니는 생계유지를 위한 별다른 도리가 없어 재가를 했다고 한다. 임 지회장은 할머니 고 박영학씨의 보살핌 아래 자라면서 ‘아버지 없는 설움’과 ‘경제적 어려움’ 무엇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에 대한 동경과 원망’으로 50평생을 살고 있었다. “결혼할 때 아버지가 그립지 않았느냐?”

는 질문에 북받쳐오는 눈물을 애써 참는 모습에서 그 간 겪었던 슬픔과 고통의 일부가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그러나 임지부장은 자신보다 힘들고 어려운 유족들이 더 많다고 말한다. 그래서 보훈의 달인 6월 한 달만이라도 함께 슬퍼하고 순국선열의 뜻을 마음속으로 기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임 지회장을 통해 보훈단체가 갖는 딜레마를 들을 수 있었다. 흔히 보훈단체를 우익보수로 규정, 젊은 세대들과 교류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공자와 유족들은 고령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상당히 우려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국가관이나 전쟁의 폐해를 알리긴 해도 마음으로 전해지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집권세력이 반공이데올로기 및 지배이대올로기로 ‘전쟁’과 ‘국가’를 이용했고, 이러한 것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젊은 세대와의 괴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임 지회장이 젊은 세대들에게 전쟁이 뭐냐? 라고 물었을 때 총을 들고 싸우는 것이라는 짧은 대답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은 생각보다 참혹하고 생각보다 오래가는 상처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왜곡된 반공교육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전쟁의 상처, 그리고 국가관에 대한 교육은 어느 사회 어느 국가에서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임 지회장으로부터 유공자와 유족의 어려움과 유족들의 일반 국민들에 대한 아쉬움도 들을 수 있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전쟁 유자녀들의 아픔, 결혼 첫날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야 했던 미망인 이야기, 만삭을 한 아내를 뒤로하고 전쟁터에서 전사한 남편의 사연 등 당진에서도 전쟁으로 인한 아픔과 상처는 상존하고 있었다. 임 지회장은 힘들고 아버지가 그리울 때 아버지의 위패가 있는 충령사에 가곤 한다. 충령사를 향할 예정이었던 이날도 임 지회장은 “잠시 기다려 달라”면서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후에야 충령사로 향했다.

아버지의 위패에 분향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에서 6월 녹음만큼 깊은 그리움이 느껴졌다. 김항룡 기자 hrkim@djtim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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