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이란 올바른 여론형성을 통해서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인데 이 작업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지역신문발전지원법 등 앞으로의 언론개혁을 위한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한겨레신문과 지역 언론이 갖고 있는 어려움은 계속 유지되고 언론개혁이 완료되는데 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 한국의 언론개혁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국가의 지배세력은 공익성을

추구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은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인 것이 문제

그리스 정치학 담론이 왜 공화국이었는가? 공화국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한 공익성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상황은 사회구성원 전체가 공화국이란 의식이 없이 공익을 추구하는 것을 등한시 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의 공화국은 하나의 지배형태로만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상태가 지극히 험악한 상태가 되면서 공익을 추구하는 정신은 나날이 실종되고 있다. 이러한 공익추구의 실패는 많은 사회개념들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사회구성원에게 대학을 가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도 높아지는 등 물적 토대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익성과 공공성은 배제되어 가고 있다.

친일 진상 규명법과 관련해서 한국사회는 일제 부역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 그래서 늦게나마 이러한 법의 제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일제부역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산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지배세력이 됐다는 사실이다. 즉 사익을 위해서 민족을 배신했던 사람, 즉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공익성을 담당해야 할 국가세력(지배세력)이 됐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붐이 함께 일면서, ‘상생’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일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상생의 정치를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상생이란 공익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과 하는 것이다.

공익을 추구해야 할 지배세력에 사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 부문 즉 정치·교육·언론·국방·치안·법조 등이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에 의해 모두 변질되기 때문이다. 정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나라당, 자민련 등의 정당은 사당의 성격이 강하다. 즉 정당마저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었고 이들에 의해 국가가 운영된 것이다. 교육부문에 있어서도 사익을 추구하는 사립학교가 전체교육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라고 일컬어진다. 이러한 언론 역시 이윤창출을 위해 노력하는데 문제는 공기의 탈을 쓰고 사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사회가 민주화되고 정치권력이 힘을 잃으면서 정치권력과 조중동이 수평적 관계로 전환했고 조중동은 권력과 영합해 쌓아온 부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언론권력과 자본이 비대해지는 ‘꿩 먹고 알 먹는 상황’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직면한 문제들은 일순간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언론·교육 등 사회구성원의 노력에 따라 오랜 시간이 걸려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지역언론 활성화 중앙정부의 영향력과 밀접한 관계

교육 등 자신의 삶이 연관된 것들이 서울에 몰려 있기 때문에 지자체나 지역신문에 정보를 의존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이 높으며, 따라서 조중동을 읽을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지역신문이 선호되고 있는 것은 불확실성의 정리가 매우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지역균형발전법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지역의 사익추구집단이 누리고 있는 토대를 더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 토호세력에 대한 정리가 있은 다음 권력분산이 이루어져야 본래 추구하는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

노회찬 민노당 의원은 조선일보를 ‘품질 좋은 신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은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만큼 성실하다. 사익을 추구한다는 것 때문에 성실한 것이다. 또 정통성이 없기 때문에 사익집단들끼리의 결합은 강력하고 공익을 추구하는 집단보다 성실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세력이 얼마나 성실한가?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보다 100배 이상의 성실성과 단단한 연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문제의 본질은 공익을 추구해야 할 지배세력 대다수에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사회적 책임의식과 공익성을 추구하려는 의지인 것이다. 우리사회의 엘리트들은 엘리트가 아니다. ‘사회 없이 엘리트는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소위 엘리트라고 지칭되는 SKY출신들은 당연한 보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노동법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나라만큼 노동법에 대한 지식이 낮은 곳은 없다. 신문을 보지 않는 것도 자기성숙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김항룡 기자 hrkim@dj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