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의 八月ㅡ. 우선 새 삶의 문을 노크하게 한다. 지난 여름 휴가로 모든 것을 과거로 청산했기 때문이다. 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새롭게 출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광복! 그 민족적인 영광의 환희가 우리를 늘 새롭게 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 달은 젊은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일깨우게 해야 한다. 그 날 사람들은 모두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아ㅡ 八月, 이제 나라를 되찾았으니 뼈대있는 교육 좀 합시다!"

그러나 이 다짐은 겉돌았고, 오늘의 60-70년대는 완충지대에서 가치 전도의 혼란을 거듭하다가 세월을 다 보냈다. 그들은 아직 스스로의 참 위치를 모르고 있다. 이유는 광복 후 그 의미가 확고하게 체질화되지 않았던 때문이다, 명리에 초연한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던가? 가치 전도에 수분 수절을 잃고 방황하다가 국토 통일의 제일의적 과제조차 챙기지 못했다. 그 때문에 우리의 2세, 3세가 그 부모와 할아버지의 우유부단했던 불확실성 시대를 재연하듯 비리와 탈선을 거듭하고 있다.

八月이 오면, 늘 다시 생각해야 했던 외래어사용 문제의 반성! 외래어 간판, 약 명, 식품 명을 고치자는 운동이 그 때마다 활발했다. 그러나 그뿐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우리말 화된 외래어를 구태여 버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한글세대의 조소 섞인 반문이다. 영어, 불어 독어, 러시아어, 중국어, 게다가 이제는 터놓고 일어까지 끼어 들었다. 그 때문에 광복 후 아름답게 길러야 했을 모국어가 국어학계의 무기력한 국외자적 방관으로 피도 살도 빠지고 뼈대만 남고 말았다 .실로 `뼈대있는 교육'의 아이러니컬한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초등학교 어린이의 국어실력은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낮다. 국어라는 낱말의 뜻을 모르고 있을 정도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아이들을 외국어 해외 연수를 위해 미국과 영국에 대거 수출하고 있는 상황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이들을 내보내고 있는가? 한마디로 미디어의 책임이다.

우리를 일깨우는 8월ㅡ. 광복의 축제는 올해도 생략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반성의 의미는 부수되지 않았다. 통탄할 자괴감에도 반성 없이 무슨 한국의 장래를 위한 문화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인가? 이성의 소리를 경멸하는 사회ㅡ 그러기에 황폐한 문화로 혹심하게 비판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위기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객관적 판단을 되찾아 평화를 정착하게 할 냉정한 지식을 체질화해야 한다. 각종 시위로 우리 문화가 파괴되는 현상은 유감이다. 무질서한 노동현장의 투쟁으로부터 한국문화의 파괴를 차단해야 된다. 이는 언론사상을 지키는 미디어의 투쟁 못지 않게 문화단체의 문화보전을 위한 투쟁으로 필요한 현실이다. 문화인의 소극적인 태도는 참으로 비참하다고 할만하다. 우리 문화를 지키자는 이유가 각종 위해한 악법을 이 기회에 정리하자. 八月이 지닌 의미는 여기에 있다. 문화인의 민주주의란 무엇을 시사하는가? 우리 사회의 병폐를 문화인이 가려내 이 정신을 밑거름으로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해 나가자는 것이 아닌가!

八月, 광복의 역사를 올바로 정리하는 삶ㅡ. 문화인의 투쟁에서 혁혁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서로 돕는 이웃 찾기에 먼저 착수함직하다. 인보상조에 목적을 두지 않은, 국민적 단결을 목표로 하는데 있다.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이웃 사촌'의 속담을 상기하자. 지금 일본의 奈良 아스카에서는 `신라고분 국보전'이 열리고 있다. 일본문화의 근본을 알게 하려는 데서 일본학생들에게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八月ㅡ.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우리문화 예술의 진지한 홍보 계획도 필요하다. `뼈대있는 교육'을 실시하자는ㅡ 광복의 그 날, 그 기쁨을 상기해 우리 문화예술의 세계적 아름다움을 적극 해외에 선양하고 세계무대의 중심에서 우리의 빛나는 길을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八月! 이제 세계는 한국 안에 있다. 八月은 그렇게 한국 안의 세계여야만 하도록 횃불을 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