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식용 지게를 만드는 손낙서 할아버지
고대면 진관2리를 지나다 노상에서 지게를 지고 한 손에는 지게를 들고 복중 뜨거운 열기를 잊고 발걸음도 힘찬 손낙서(71)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지난 7월 28일이다.
당진시대를 비롯해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할아버지는 쉽게 대화를 허락해 주었다.
“나를 따라와 집으로 가서 이야기 혀까”라면서 차를 앞질러 집으로 안내한다.
집안에 들어서기 전 할아버지의 작고 아담한 공방이 있었다.
지게 할아버지답게 공방 안에는 크고 작은 장식용 지게가 만들어져 있고 전통농기구인 써레, 쟁기, 베틀, 양념통, 절구, 등잔, 물지게 등 다양했다.
집안으로 안내해 준 사람은 할아버지의 평생 친구 김현기(71)할머니다. 마루에 시원한 자리를 권하고 선풍기를 돌려주며 노고가 많다고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는 “우선 시장할 테니 먹구혀”라며 감자와 단호박을 권했다.
마루 구석에는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모아둔 수석들이 투박하게 진열돼 있었다.
“응, 저거 내가 소일 삼어 해 봤지”라며 덤덤한 모습이다.
그동안엔 작업실이 없었는데 올해 만들었다고 한다. 소박한 작업실 그 자체다. 흐린 백열전구 아래 할아버지가 공들여 만들었을 공예품들.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이 녹아 있는 세월의 잔상들이다.
어려운 세월을 보냈을 할아버지의 손은 지게나무와 같다. 하지만 그 딱딱함에 안으로 파고드는 부드러움이 있다.
13년 전부터 공예품을 만드는 일을 했다는 할아버지는 종소(번식용 소)를 군에서 받아 일평생 농사일을 해왔다. 그동안 만든 여러 작품을 고대초등학교에 기증해 아이들의 교육자료로 활용하게 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탑동사거리에서 전통공예소품을 팔았으나 요즘은 영업망을 확대했다. 오전에는 탑동사거리 오후에는 도비도에서 장사를 한다고 한다.
“이런 일이 어려워? 이건 소일이고 취미여. 그리고 즐기기는 일이다보니 건강을 주더라구.”
식전에 일찍 일어나 산에 가서 재료를 구하고 작업실에서 작업을 한 다음 한 지게 지고 출근했다가 점심때 잠시 집에 들른 후 이내 버스를 타고 석문 도비도로 출장을 간다.
“짹금 벌든 많이 벌든 상관 않혀.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손주들과 지나는 데 알아보고 인사하는 아이들을 볼 때 기분이 좋아져.”
손 할아버지의 건강을 지켜주는 또다른 비결은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과 술을 절대하지 않는다는 것.
할아버지의 노루꼬리 시간을 잘라 먹었으니 할아버지와 도비도까지 동행했다.
“요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땀흘리는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여. 2~3일만 일하면 쌀 한 가마 값을 벌 수 있는디. 도둑질을 하고 돈이 없다고 죽고, 애들을 죽이고 그러는게”
그리고 “군청에서도 옛것을 중요하게 생각 안 하는 모양이여 그저 구색을 맞추는 도구쯤으로 보고 있어.”
손 할아버지는 군에서 개최하는 공예품경진대회에서 동상·은상도 수상한 바 있다.
“아직 2등밖에 못했어”라며 이 분야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손 할아버지를 보며 ‘사무엘 울만’의 좥청춘좦이라는 시를 생각한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라는 눈에 파묻히고, 비탄이란 얼음에 갇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이십세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없다. 그러나,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일 것이다.”
이 시처럼 손낙서 할아버지는 이미 청춘이고 오늘도 내일도 젊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