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군 산업과 이수(45세)과장은 요즈음 추곡수매 마무리에, 배추소비 문제에, 인천에 임대개설한 직판장 매입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거기다 군의회 예산심의도 받아야 하고 각 읍면마다 농어촌 발전계획 조정에 대한 설명회도 가져야 한다.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게다가 쌀 개방 문제로 보통 곤혹스러운게 아닙니다. 저한테도 농사짓는 형님이 계십니다만 쌀 개방에 관해서 만큼은 농민들께 머리를 조아릴 뿐입니다.”

그래서 요즘 이과장은 공직생활 26년만에 처음으로 잘 못자고 뒤척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우강 출신으로 농가에 태어나 농사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아는 그로서는 농민들의 참담한 심정을 십분 헤아릴 뿐아니라 당진군 농정의 책임자로서 어느때보다도 자신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소신있는 공직자로 정평이 나 있는 그로서도 완벽한 농어촌 발전계획을 세울 수는 없다.

특히 최근 쌀을 비롯한 기초농산물 15개 품목 개방이 거의 확실해져 농촌경제구조가 크게 바뀔 전망이어서 더욱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일손을 놓을 수는 더욱 없다.

이런 상황아래서 어떻게 해서든 농촌에 생산의욕을 북돋아주어야 할 입장이다.

“농민들이 어려운 실정에 놓여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정부대로, 또 입장이 있고 요구도 있고....... 저 역시 요즘처럼 갈등해 본 적이 없습니다.”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는 이과장은 ‘공개행정’을 주장하는 사람답게 굳이 어떤 것을 숨기려고 계산하는 기색이 없다.

“행정은 최고의 써비스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일본의 어느 시장이 한말인데, 그 시청은 전국에서도 가장 친절한 기업으로 꼽혔다고 합니다.”

‘행정은 최고의 써비스다’ 이과장은 이 짧은 한마디에서 공직사회의 핵심을 발견했다는고 한다.

직원들과 매사를 의논하는가 하면, 자신은 과장석에 앉고 직원들은 서서 서류결재를 받는 불편을 덜기 위해 사무실 한가운데에 8~9인용 탁자를 들여놓았다. 같이 마주보거나 옆에 앉아서 공평한 가운데 대화를 하기 위해서이다. 이 탁자는 또한 민원이 있는 주민들이 찾아왔을 때도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이제는 민원들이 엉거주춤 선 자세로 직원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다른 직원이나 상사에게 불만이나 건의사항이 있을때 사용하자고 작은 흑판을 만들었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공개행정’을 추구하다보니 다른 부서보다 자료누출이 많다는 지적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절대로 뭔가 숨겨서 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는 것이 이과장의 소신이다.

항상 떳떳하고 소신있게 주장하고 추진하는 쪽을 택한다. 대신 착오가 없도록 사전에 충분히 의견수렴과 조정을 거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35인으로 구성된 농어촌 발전계획 심의위원중에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농민회원을 위촉하기도 했다.

군의원들과도 사전, 사후접촉을 통해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고 최대한 설득하기 때문에 큰 마찰이 없다.

군 전체예산의 30%이상을 차지하는 부서지만 예산낭비 지적은 받은 적이 없다.

“군청과 군민은 별개가 아닙니다. 행정은 주민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야 하고 그랬을때 주민의 신뢰와 협조아래 지역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지녔기 때문인지 군의회가 생긴 이후의 어려움을 자신으로서는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이과장은 대부분 농촌출신인 의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고 얘기한다.

인천에 개설한 농산물 직판장은 의원들로부터 나온 아이디어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공무원 세계가 바뀌어가고 있다고 보는 이과장은 좀 더 빨리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당진에서만 20년 넘게 농업관련 업무에 종사해본 이과장은 산업과에서 계장을 거쳐 과장에 승진한 드문 사람중의 하나다.

그동안 당진농민들과 꾸준히 만나며 쌓아온 연분과 농업에 대한 애정이 관료주의나 권위주의에 젖어들 여지를 주지 않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과장은 공개적인 행정, 봉사하는 행정을 추구하는 성실한 공무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의 독단과 신농정

책, 그에 대한 농민들의 불신과 불만 사이에서 이수과장이 소신있게 혼자 넘기에는 농산물 전면개방의 산은 너무도 험난해 보이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