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또래 젊
은이들이 적지않게 그런 것처럼 김병빈(31세)씨는 어려서 당진에서 나고 자란 뒤 호서고등학교 10회 졸업과 함께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서른 줄
에 접어들었으니 객지 생활도 만으로 10년이 넘었다. 그사이 대학도 졸업하고 결혼도 했고 귀여운 딸 하나를 낳았다.
그가 대학이라는 상아탑을 벗어나 첫발을 내디딘 사회가 ‘출판사’였고 지금도 만 4년째 출판계통에서 일하고 있다. 그 자신 사회에 대한 견식을 넓힐 수 있었던 매개체가 ‘책’이어서 그랬던지, 책을 만드는 일에 자연히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좀더 엄밀히 말한다면 그는 책을 통해서 이 사회를 인간화시키는 데 일조하고자 했다. 특히 출판문화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던 80년대의 말미에 어떤 정치적인 이유로 해서든 우리 국민의 눈과 귀가 멀었던 현실은 젊은 사람으로서 깊은 사명감을 안도록 하기에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금기”라는 다분히 정치적인 차단속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회복하고자 했고, 그것이 그로 하여금 출판계에 서슴없이 뛰어들게 했다.
학민사, 한울등 비교적 진보적인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에 몸담아온 그는 최근 ‘여성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는 상식적인 생활속에서 사람들의 의식을 민주적이고 개방적으로 다듬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서는 일종의 교양활동이니까요. 더구나 아직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여성분야에 힘을 쏟는게 당연하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한시도 고향을 잊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죖우리 밀 살리기줁가 사람들 입에 회자하던 작년-재작년에는 자신도 고향에 내려와 농촌과 우리농업을 살리는 일에 몸을 바치고 싶기도 했지만 번번히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예수도 고향에서는 대접받지 못했다’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돈 많이 벌고 안정된 직장을 얻어야만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들속에서 자신의 뜻이 얼마나 있는 그대로 보여질 지 사뭇 걱정이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지방자치시대.
김병빈씨는 그동안 객지에서 젊음을 다 보내야만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기로 했다. 고향에 내려오면 지역의 낡은 구조를 허물고 새롭고 튼튼하게 고향을 가꾸는 일에 분명코 자신이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고향에 대한 애정과 드높은 의욕과 사회생활에서 얻은 적잖은 경륜을 고향에 바칠 수만 있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