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반가운 봄비가 내렸던 지난 주말, 수당리에 사는 정순호(39세)씨는 하루종일 마을회관에 앉아 애꿎은 담배만 피워야 했다. 예전 같으면 허겁지겁 논물을 가두고 못자리 하느라 한창 바쁠 터였다. 그러나 공원묘지반대 싸움이 별 진전이 없어 급기야 농사 포기를 선언한 마당이었으니 내리는 빗소리가 착잡한 마음만 들게 할 뿐이었다.

'농사꾼이 농사를 포기하다니....'

땅을 물려준 조상님들이 알면 난리가 날 일이었다. 그해 그해 농사지어 먹고 살아왔으니 당장 생계위협이 닥칠 것은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1년 농사를 포기하고 고향땅을 영원히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동안의 고통은 감수해 내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왜 하필 이곳에 사설공원묘지가 들어선다는 건지, 한적하고 후미진 곳도 얼마든지 있을텐데 3개 마을을 자나야 하고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잘생긴' 이 마을에 말이다. 왜 주민들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기관에서는 선뜻 허가를 해 주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이 싸움을 시작한지도 벌써 1년 8개월째가 되었다. 그동안 참 많은 걸 경험했고 많은 걸 배웠다. 온갖 종류의 협박과 회유를 시시때때로 당해야 했고, 조언을 구하러 이곳저곳을 다니며 전전긍긍해야 했을 땐 농사만 지을 줄 알았던 자신의 무능함이 새삼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리고 사소한 갈등은 모두 접어둔 채 조상들이 묻혀있고 자신들이 일평생 일궈온 땅을 원래 모습 그대로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무섭도록 단합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그에게 새로운 충격이었다. 생계가 달린 일 앞에선 누구든 주춤하기 마련인데 만장일치로 생업인 농사를 포기하겠다고 결의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비단 싸움에서 뿐만이 아니다. 올 2월에 준공된 마을회관 앞의 조경도 마을 사람들이 직접 가꾸어 놓은 것이었다. 마을 일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팔 걷어부치고 나서게 된 것이다.

정씨의 바램은 오직 하나 뿐이다. 하루 빨리 기관에서 믿을만한 답변을 주어 농사를 시작하고 마을이 평온을 되찾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땅밖에 물려줄 것이 없는 농사꾼 그 바램은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