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있는 사람이 뭐 큰 추억이 있겠는가. 열심히 일하고 가축을 키우는 일밖에는 별다르게 내세울 만한 추억거리가 없다. 몇 장의 사진을 들추어보니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난다.

첫번째 사진은 76년도 4-H활동을 할 때 모습이다. 농업에 마음을 두고 고향을 지키는 젊은 농부가 됐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새마을 운동이  한창 이었다. 모두들 마을길을 닦고 열심히 일을 했었다. 이때 동네에서 4-H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20여명 되는데 모두 외지로 나가고 2명만 남았다.

두번째 사진은 78년에 마을 친구들과 현충사로 봄 놀이를 갔을 때 사진이다.

지금 보니 모두가 생기 있는 젊은이다. 지금은 어느덧 어린 시절의 모습을 잃고 이름만 그대로인 것 같다. 이번 추석에는 친구들을 모두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모두가 떠난 고향을 혼자서 지켰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고향마을 이장을 삼대째 보면서 나 나름대로 고향에 봉사를 한다고 생각한다.

군내에서 3대가 이장으로 봉사한 가정이 아직은 없는 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마을의 일꾼이 되려고 한다.

세번째 사진은 81년에 결혼을 앞두고 동네 언덕 꽃밭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래도 멋쟁이처럼 보이려고 애쓴 표정이 역력하지만 지금 보니 무척 어색하다. 그 해 결혼한 아내(조문희, 44)는 이제 내게 없어서는 안될 절친한 친구가 되고 있다. 이제는 아내와 덩그러니 둘만이 마주보는 시간이 전보다는 많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아내와 커피 향을 사이에 두고 앉아 옛날도 그리워하고 아이들 걱정도 하면서 지내곤 한다.

네번째 사진은 87년도에 동네 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갔을 때 사진이다.

동네 친구 중에 제일 늦게 결혼한 친구부부와 부부동반으로 합동여행을 한 것이다. 이 여행은 우정을 다지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원님 덕에 나팔분다’고 우리 부부가 감귤농장에서 마차를 타고 멋진 포즈를 지어 봤다.

추억은 나에게 신선한 웃음을 주는 묘약이고 몇 장의 사진은 나를 동심으로 이끄는 통로다.

윤 성 렬 (49 / 송산면 당산1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