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팔루자에 퍼붓는 미군의 포탄 세례와 맨몸으로 맞서는 저항 세력의 테러 장면을 전하는 TV 화면이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9.11 테러의 끔찍한 장면을 비롯한 같은 유형의 뉴스를 많이 보아 생긴 면역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생산되고 있는 숱한 갈등의 뉴스에서 더 큰 섬뜩함을 느낀다. 언론학자들이 얘기하는, 내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이 더 큰 뉴스가 된다는 근접성의 원칙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오늘 우리 사회는 갈등의 늪에 빠져 있다. 아니 갈등이라기보다는 투쟁과 전쟁의 단계까지 이른 것 같아 겁이 난다.

좌와 우, 보와 혁, 젊은 세대와 낡은 세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수도권과 충청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갈등과 대립과 투쟁...

파업을 다짐하는 공무원노조와 민주노총, 장사가 어렵다고 나선 식당 주인들의 솥뚜껑 데모, 먹고 살게 해달라는 윤락여성과 포주들의 시위...

왜 이런 일들이 거듭되고 더 심해지고 있는가?

지난 7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수만 명의 교육자와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사립학교법과 교육법 개정을 반대하는 전국 교육자 대회가 열렸다.

점잖은 선생님들이 내세우는 구호와 부르짖는 외침도 섬뜩한 내용이 많아 ‘큰일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좌경을 비난하는 구호는 좌익세력의 선동수법과 다르지 않고 전교조를 질타하는 외침은 전교조의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점잖은 선생님들을 이렇게 과격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서울 등 대도시의 매미 울음소리가 엄청 커졌다는 뉴스를 봤고 그 이유가 자동차 소음 때문이라는 설명이 맞는다는 생각도 했었다. 사랑을 부르는 소리를 막는 자동차 소음을 이기기 위해서 더 큰 소리로 매미가 운다는 것이다.

모든 사회는 갈등의 씨앗이 자라고 부딪히고 조정하면서 변하고 발전한다.

어려워도 망하지는 않는다는 생각과 늙은이들은 고려장으로 가야 한다는 발상도 문제의 씨앗이고 사태를 점점 더 심각하게 만든다.

어릴 때 친구 집에서 본 家和萬事成이란 교훈도 생각이 난다.

집안이 편안해야 모든 일이 잘 된다는 소박한 교훈이 요즘 사회에서는 너무 소박해서 버림받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허나 작은 싸움이 큰 싸움을 부르고 불화가 새로운 불화를 낳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일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갈등과 불화는 끝이 없을 것이고 너와 내가 모두 힘들고 불행해질 것이다.

우리의 갈등과 불화를 푸는 쉬운 해법으로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을 내세우고자 한다. 좀더 솔직하게 國和萬事成(국화만사성)이란 조어로 대신하고 싶다.

국민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갈등은 풀리지 않는다. 국민이란 너와 나이고 국무총리와 한나라당이고 기업주와 근로자이고 가진 자와 잃어버린 자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 아닌가.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나 크고 작은 갈등은 존재하지만 싸우고 싸우다 보면 모두 상처입고 같이 망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