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관광목적, 혈세낭비 - 외국 공관서도 ‘한국인 방문사절’

시민감시 외에 의회활동 감시·통제기구 전혀없어

관광 아닌 연수 목표로 의원 ‘자각’ 우선

지방자치 전문기관 통해 내실있는 일정 마련하고

연수계획·연수결과에 대해 시민 동의·검증 받아야

2000년 새해가 밝기가 무섭게 도내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연수계획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의원들의 의정활동의 자료를 얻기 위한 해외연수는 필요한 일임에도 시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하나같이 그 성격이 ‘관광성’이라는데 있다. 의원들이 유람성 해외나들이에 열을 올리면서 집행부에 긴축과 과감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특히 구제금융의 여파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실업대란과 생활고에 고통스러워 하는 시민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임기중 1회의 해외연수가 가능하다는 규정만을 되뇌이는 모습도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지방의원 외유실태

지방의원들에게 불기 시작한 ‘해외유람’ 바람은 ‘국제화·세계화’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1991년 기초의회 및 광역의회가 출범한 직후 한국정부의 국정지표는 ‘국제화’와 ‘세계화’였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투어 외국의 자치단체와 자매결연을 맺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럼에도 유독 지방자치단체나 지방공무원에 비해 지방의원들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것은 자치단체 공무원의 경우 중앙부처의 감사 등 직·간접적인 통제가 이루어지지만 지방의원들은 시민감시 외에는 아무런 통제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의원 ‘해외나들이’ 사례

원래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비 본래 취지는 해외연수를 통해 견문을 넓혀 이후 의정활동에 반영,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그럼 여기서 지난해 광역의회의 해외연수 사례를 보자.

시의회 의원들이 IMF 관리체제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의 혈세로 장기간 해외여행을 다녀와 원성을 사고 있다. 의원들은 이번 외유에 ‘선진국 의회제도 견학’이란 명분을 내걸었으나 사실상 유럽관광명소만을 골라다녀 ‘넋나간 의원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건설소방위 소속 의원 6명은 5천만원의 예산으로 99년 2월21일부터 3월3일까지 10박 11일간 러시아, 스위스,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 유럽 5개국을 다녀왔다.

외유의원들은 선진의회 견학일정을 빼고는 각국 관광명소 구경과 쇼핑 등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의원들은 모스크바에서 교통시설 견학이란 형식상의 공식일정 아래 붉은 광장, 궁백화점, 크렘린궁, 레닌묘 등을 구경했다.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한 의원들은 곧바로 루체른으로 이동해 루체른 호수를 둘러보고, 알프스 영봉 리지쿨름을 등정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스페인 광장과 돈키호테상 등 시내견학을 하고, 영국에서는 국회의사당과 버킹검궁, 런던타워, 대영박물관 등을 관광했다. 프랑스에서는 3일동안 루브르박물관, 개선문, 샹제리제 거리 등을 관광하고 귀국했다.

99년 3월4일 모신문 기사

다음은 최근 충남 모 군의회의 사례다.

군의회가 계획하고 있는 해외연수 일정 대부분이 관광지 견학으로 채워져 있어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의원 12명과 직원 4명을 포함, 총 16명은 오는 2월20일부터 3월5일까지 14박 15일 동안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 6개국 선진지를 견학하기 위해 개인당 4백40만원 등 모두 7천여만원의 예산을 세워놓고 현재 모 항공여행사에 연수를 의뢰해 놓은 상태다.

일정표에 따르면 해외연수 첫날 영국 런던에 도착, 시의회를 방문한 후 영국 왕실 하계별장인 윈저성, 대학도시 옥스포드 등 문화시찰을 시작으로 21일 대영박물관 관람, 버킹검, 하이드파크, 웨스트민스트 사원, 국회의사당, 타워브리지, 트라팔가 광장 등 하루내내 관광일정이 짜여져 있다. 프랑스 일정 역시 23일에는 베르사이유 궁전, 에펠탑, 개선문, 샹제리제 거리, 몽마르트 언덕 등을 방문하는 것을 하루일정으로 잡고 있으며, 24일은 루브르박물관, 신도시 라데팡스, 콩코드 광장, 오페라하우스 등을 견학하는 등 사실상 관광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다.

2000년 1월17일 모 지역신문 기사

해외여행사의 여행상품 소개를 방불케하는 위 두 사례는 지방의원들의 ‘관광성 여행’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죽했으면 한국정부에게 “제발 좀 우리 시청에 한국 공무원들과 지방의원들을 보내지 말아달라.”(1994년 11월 프랑스 파리시청), “한국 공무원들의 과다한 연수시찰 방문으로 일선 업무수행에 지장이 많으니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1994년 11월 싱가포르 정부)는 호소조의 방문사절 편지를 보냈겠는가.

■개선방안 뭔가

물론 해외연수를 선진제도를 배우는 기회의 장으로 활용하는 의회도 없지 않다. 또 홍성군의회의 경우 아직은 해외연수를 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 해외연수 예산 자체를 책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의회는 목적이 불분명한 ‘관광성 외유’에 치유쳐 있다. 이 때문에 행정자치부는 예산편성지침을 통해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를 임기중 1회로 제한하고 있지만 자매결연 도시방문을 명분으로 1년에 1번 이상 해외방문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선방안은 없을까

잠깐, 당진참여연대 이충영 사무국장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보자.

“우선 의원들의 근본적 자각이 필요합니다. ‘관광’이 아닌 ‘연수’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국장은 해외연수 자체를 내실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여행사를 통해 일정을 짜기 보다는 지방자치 국제화재단 등 전문기관을 통해 체계적이고 내실있는 일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도 지방의원의 해외연수계획의 세부사항까지 공개하고 시민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의원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의정활동에 필요한 연수라면 해외연수 참가의원의 명단, 목적과 방문지, 연수내용, 관광내용 등 세부내역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죠. 나아가 연수를 다녀온 후 그 성과에 대한 공개적인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시민들의 혈세가 투여되고 있는 만큼 시민들도 지방의회의 해외연수 계획과 실적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하고 ‘유람성 외유’에 대해서는 비용반납을 요구하는 등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자치는 시민들의 ‘참여정도’와 ‘관심정도’ 만큼만 자란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