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도에 신평주민은 1096농가에서 농사자금 등으로 모두 33,342,000원을 대출했다. 같은시기 라디오는 총 2639호에 2308대가 보급되었다. 이중 전지식 라디오는 28대였고 나머지 대부분이 트란지스터였다. 이때 텔레비전은 17대에 불과했다.
60~70년대 신평면민이 가장 많이 본 신문은 조선일보였다. 1963년도 신평면내 민간인 신문구독자수는 149명으로 전체 가구수의 5%에 그쳤다. 이중 조선일보 구독자가 63명, 동아일보 30명, 한국일보 22명 순으로 많았다. 1973년도엔 463가구(17.6%)가 신문을 구독했으며 조선일보가 133명이 구독해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다음은 경향 83, 동아 74 순이며 정부에서 이른바 계도지로 배포한 서울신문의 구독자는 35명이었다.
1973년도 통계중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미망인 현황이다. 당시 신평면엔 모두 506명의 미망인이 있어 군내에서 가장 많았다. 미망인이 부양해야 할 가족수는 평균 4인이 112명으로 가장 많았고 5인 103명, 6인 이상도 95명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