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의 끝자락이 어딘지를 모릅니다. 나도 역시 나의 생이 어느 순간에 끝날지를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삶의 끝자락이 얼마 남지는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1개월이라고 선고 받았던 삶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얼마나 계속될지는 나는 모릅니다.
이런 나에게 바람이 있다면 내가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우아한 모습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애착이 없이 겸허한 모습으로 나를 내놓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를 마지막까지 온전히 내 놓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정 다 내어 놓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제 육신은 점점 한계를 향해 가고 있는 듯 합니다. 몹쓸 병이 들지 않았다면 나의 육신 부분 부분을 모든 필요한 이들을 위해 ‘장기기증’을 하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장기 기증은 어려운 듯 합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육신을 표본으로 내놓거나 해부용이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지금 마지막까지 내 육체가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이렇게 세상의 마지막 순간에 쓸모 있게 사용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삶에 기쁨을 보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는 마지막 봉헌’을 쓰면서 남기고자 하는 이야기는 우선 모든 이에게 ‘헌체(獻體)’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인식입니다. 흔하게 알려진 용어도 아니고 공인된 용어도 아니지만 자신의 육신을 봉헌 한다는 것이 참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혈액을 기증하면 헌혈이라고 합니다. 비록 용도가 다 된 육신이기는 하지만 온전한 육체를 기증한다는 것은 당연히 ‘헌체(獻體)’라고 불림이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헌체된 육신이 교육을 받는 의대생에게서 경건하게 다루어 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나도 수의과 대학을 다닐 때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두개골을 들고도 다녀보았고 해골에 담배를 피워 물리는 친구들도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물론 가까운 의사 친구들도 헌체가 경건하게 다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언젠가 동의 없이 사체에서 피부를 박리해서 매매가 이루어졌다는 언론의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헌체를 하는 데 걸림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들은 저지르는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문제이지 내가 개의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법적으로 규제가 심한 경우 치료를 받을 수 있거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치료 방법이 사체훼손이라는 이유로 제한된다는 것도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들은 바로는 러시아나 중국이 화상을 치료하는 기술의 수준이 높다는 정보를 들었는데 그것은 치료에 필요한 피부를 확보하기 용이해서라고 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다루던 아니던 나의 생각은 내가 내 놓은 어떻게 보면 시간 차 일 뿐이지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물질적인 것에 왜 미련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던 나는 온전히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합니다. 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주저하거나 망설일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인간은 어떤 외형이든지 존엄하다는 인식을 가지기 바랄 뿐입니다.
인간은 어떤 모습이던지 존엄성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은 행려병자로 죽은 사람이나 고귀한 신분으로 살아온 사람이나 하느님 보시기에는 아무 차이도 없다는 것을 우리 인간들은 기억을 해야 합니다.
권건오
E-mail : fuoco@catholic.or.kr
말기 폐암으로 머리에도 퍼져서 1개월의 생존을 선고 받고 하루 하루를 이어 가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30년을 넘게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학래산방(鶴來山房) 에서 살다가 지금은 경기 안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언제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