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지루한 장마와 무더위도 자연의 질서 속에 쇠퇴하여 조석으로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서늘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봄을 재촉해 서둘러 시작된 못자리로 조기 이앙한 조생종 벼가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들판에서 벌써 수확이 시작되고 있다.
일찍 출하하는 햅쌀이 언제나 높은 가격을 형성했고 또한 그 바램을 기대하며 풍년의 기쁨이 충만해야 할 농부의 마음은 우수사려에 휩싸인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농협RPC마다 바닥이 벌써 났어야 할 지난해 수확된 벼가 아직도 상당량이 적치되어 있고 금년에 수확될 벼가 적치되어야 할 창고를 수입쌀이 차지하고 있으니 이나라 농업은 어디에 서야 하며 참담한 농촌현실에서 겪고 있는 농업인의 고뇌가 안타깝기만 하다.
식량이 부족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식량자급을 위해서 녹색혁명의 위업을 달성한 농업인이 있었기에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황폐화를 불구경하듯 방관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장래가 암울하기만 하다.
FTA의 목적은 자유무역의 확대를 통한 당사국의 이익증대에 있기 때문에 체결대상국과 품목에 따라 이해당사국의 입장이 엇갈릴 수도 있다. 우리 농업인들이 지난해 한-칠레 FTA비준을 강력히 반대하고 확실한 대책마련을 요구한 것도 이 협정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계층이 바로 농업인들이었기 때문에 농업계의 거센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
칠레산 농산물 수입문을 열고 반면 가전제품, 자동차, 핸드폰 등 우리나라 공산품 수출의 문을 열어 업계는 상당한 이익증가로 희비가 엇갈렸지만 농업이 받는 충격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다.
역으로 칠레와 같이 우리나라도 칠레산 가전제품, 자동차, 핸드폰을 수입한다면 그리고 우리 농산물을 수출한다면 업계의 반발과 대책은 의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공산품 수출이 나라가 잘사는 길이라면 이익집단이 피해집단을 도우며 사는 길이 바른 것이지 한쪽은 망하고 한쪽은 흥하는 것이 잘사는 일인가 묻고 싶다.
농업이 막중한 가치를 지닌 국민산업임을 인식해야 할 우리국민의 의식이 너무나 쉽고 빠르게 모든 것을 잃고 있음이 정말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고유가의 고공행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1배럴당 30달러를 넘나들던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호가해도, 아니 백달러를 호가한다해도 기름 한 방울 생산못하는 우리나라의 형편에는 속수무책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깊은 교훈을 얻어야겠다.
모든 산업 동력의 원천인 기름도 중요하지만 우리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그러기에 식량이 중요한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경제적 타산으로 우리 쌀값의 4분의 1값 밖에 안되는 외국쌀에 우리의 생명을 맡겨보자는 주장이 얼마나 타당하지 않은 것인지 고유가의 상황에서 깊이 통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금년부터 그간 600만섬 정도 매입하던 정부수매제도가 폐지되고 공공비축으로 400만섬의 시가매입을 정부가 계획하고 있지만 영농비를 포함, 농가가계운영비 등 목돈이 필요해 수확기 홍수출하가 이루어지고 이에 수반되는 가격하락은 물론 수매의 어려움은 자명한 일이다.
지금도 지난해만 같아도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야 할 햅쌀이 가격의 호가는 고사하고 수매가 되지 않고 있어 이제 농가를 압박하고 있다.
농업인도 이제 국가가 의지를 갖고 정책적으로 지원하지 않고 자유경쟁으로 방관한다면 더 이상 버틸 힘도 없고 두 손 들 수밖에 없다.
이런 극한상황이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피치못하게 이런 상황에 이른다면 환경을 팔아 공산품 생산으로 환경을 망쳐놓고 고유가보다 더 가혹한 쌀값에 우리 생명이 부지 않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농업의 사양추세로 이제 젊고 유능한 농업인력은 농촌을 떠나고 고령화농업인으로 가속되어 5년이내에 농업종사인구는 현저히 감소될 수밖에 없다.
농업의 문제는 비단 농업인만이 책임지고 걱정해야 할 일이 절대로 아니고 우리 국민들이 국민산업임을 함께 인식해야 할 것이다.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들녘을 바라보면서 기쁨보다 시름에 빠진 농부의 깊은 고뇌를 누가 헤아릴 수가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