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총무이사

어제는 친구의 모친상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문상을 마치고 상주로부터 중학교 친구들이 지하실에 모여있다는 이야길 듣고 가보니 낯익은 얼굴, 조금은 생소한 얼굴 이십여명이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자리잡고 앉으니 어느 친구, 술부터 권한다. 단숨에 서너잔 마시고 친구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느 친구의 이십오년 전 친구란 말에 내심 화들짝 놀랐다. 아! 그때의 세월이 벌써 이십오년이란 말인가! 새삼 세월의 무게를 실감한다.

그래, 그땐 그랬었지. 개구쟁이 그 소년은 대머리가 넘어간 중년의 아저씨로 저쪽에서 담배를 피워물고, 큰 형님처럼 웅장했던 그 친구는 이후로 성장이 멈춰 왜소하고,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았던 저 친구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단발머리에 검정교복을 입었던 내 첫사랑이자 짝사랑이던 그 소녀도 어느덧 중년의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 저쪽에 앉아있다.

말 한마디 못하고 얼굴 한번 제대로 마주보지 못하며 시린가슴 남몰래 감추고, 그저 그 소녀 주위를 몇년간 맴돌았던 그때의 그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간직했던 열네살 소년이 어느덧 불혹의 나이가 되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때 내가 널 짝사랑했었노라고 말하는 나 자신을 보며 잊고 지낸 세월의 힘을 느낀다.

조용히 담배하나 피워물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세월을 회상해 본다.

흘러간 그 세월동안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어쩌다 한번이라도, 혹은 아주 어쩌다 한번이라도 뒤돌아보며, 달려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닐까!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가져 보겠다고 바둥거리며 살아오는 동안 정작 소중한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중했던 그 때의 그 시절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한 것일까, 아니면 세파에 찌들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소중한 것일까.

어느덧 훤하게 먼동이 터오는 이 밤. 아련한 그 추억들을 차곡히 쌓아 두었다가 백발의 내가 보따리 풀 듯 하나씩 풀어보아야겠다.

종교는 없지만 이번 주말에는 조용한 사찰이라도 찾아가서 세상의 짐을 벗어놓고 고단한 내 영혼을 조금이라도 정화하며, 이십오년전의 그 개구쟁이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와야겠다.

그들의 추억속에서도 내가 아름답게 기억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