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곡교회 담임목사

기러기들은 먼 거리를 이동할 때 V자 형태로 날아간다. 그런 형태로 무리를 지어서 날면 한 마리가 날 때보다 훨씬 힘이 덜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앞에 있는 기러기가 날개 짓을 하면서 내는 바람이 뒤에 있는 기러기를 올려주고 또 그 기러기가 내는 바람이 바로 뒤에 있는 기러기를 올려주어 혼자서 날 때보다 71%나 힘이 덜 든다고 한다.

사람들도 기러기처럼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을까? 뉴스에 들려오는 소리는 한국이 OECD 국가중에 자살율이 1위라고 한다. 외국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 중에 그래도 한국이 사람살기는 제일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살기 좋다는 한국에서 자살율이 제일 높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나라의 지난해 자살자는 1만2천명으로 하루평균 32명이란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수도 25.2명으로 10년전보다 2.4배나 늘어났다고 한다. 삶의 자리에서 좌절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 당진군에서만도 올해에 35명이 자살을 했다고 한다. 자살을 하면 당사자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린다. 자살자의 책임은 사실 50%이다. 그리고 사회가 50%의 책임이 있다. 그 50% 속에는 내가 있다.

자살의 동기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생기는 상대적인 좌절감이다. 그리고 하나는 정신적인 건강함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급변하는 와중에 사람들은 자기정체성을 건강하게 형성하지 못하고 불안해 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공부 스트레스와 진로문제 때문에 자살을 하는 안타까움, 중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경제적인 고통과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아픔, 노인들의 자살선택은 고통을 줄이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부모의 심정을 느끼게 한다. 작년에 61세 이상의 노인 자살자들이 4220명이나 된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죽음의 권리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간에게는 생의 본능과 함께 죽음의 본능이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는 이 두 가지의 본능을 나중에 깨달았다.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 균형을 이루며 상생의 작동을 할 때에 인간의 정신은 건강해 진다. 그런데 환경의 충격으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폭력이 드러난다. 자살도 하나의 폭력이다. 상대를 향한 폭력이 불가능해질 때에 자신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살이다.

죽음의 신(Thanatos)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신은 항상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을 한다. 죽음은 하나의 과정(Process)이다. 자살은 새로운 생명으로의 탄생을 하고 싶은 욕망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욕망의 갈구에 우리들은 응답을 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 자살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동조자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살자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침묵으로 자살자를 외면할 것인가? 이제 가족들이 가족들의 죽음을 다 책임을 질 수가 없다. 사회와 국가가 책임을 분담하여야 한다. 산업사회 이후에 고착된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도록 창조되었다.

삶의 질을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공동체 운동이 필요한 곳은 대한민국이면서 그중에 당진이다. 내 고향 당진에서 자살자들이 늘어나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이 땅에 희망이 좌절되어서 자신을 죽이는(suicide/ sui=I, cide=kill) 한 맺힌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 줄 사람은 누구일까? http://www.saego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