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실한 사양관리와 소신경영 돋보여
20년전 석문면 교로리. 유배지나 다름없을 정도로 오지였던 이곳에 갓 결혼한 젊은 부부 한쌍이 들어와 둥지를 틀었다. 가진것이라곤 젖소 3마리. 두 마리는 남편의 아버지가 살림밑천하라고 사주신 것이고 한 마리는 아내가 혼수로 준비해 온 것이다.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그리며 낙농을 시작한 이들 부부는 사실 낙농에 대해서는 ‘초짜들’이었다. 보리인지 잡초인지 구별도 못하던 도시뜨기(?)였던 이들 부부가 바다를 끼고있는 어촌마을에 들어와 소를 키우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는 단 하나, 둘 다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시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사람이 축산부국을 이룩하자느니 어쩌니 하면서 연일 낙농선진국을 방문하고 그 나라들의 그림같은 풍경이 매스컴을 장식하던 때이기도 했기에 순진한 신혼부부의 마음이 쏠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시작이 어떠했던 상관없이 자신들의 방식대로 소신낙농을 해나갔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2005년 7월, 낙농가들이 꿈꾸는 지존입성을 했으니 바로 검정성적에서 전국 1만여 낙농가의 상위 1%인 100위내 진입(69위)을 이뤄낸 것이다. 젖소 1두당 하루 평균 유량이 39㎏으로 일반농가보다 15㎏ 이상의 우유를 생산해 내고 연간 유량 11.244㎏으로 낙농선진국이라는 일본 낙농가(9500㎏)보다 1700㎏ 이상의 우유를 내고 있다. 월 순소득이 1천만원이 넘는 부농으로 성장한 배경은 운이 좋았던 것도 때를 잘 만난것도 아닌 오직 그들만의 노하우와 성실함 때문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 김성규·김숙희(48)씨 부부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본다.
성공비결 하나, 성실성과 전문성
소에게만 관심을 쏟는다
김씨부부의 소들은 3.4산으로 일반농가의 2.4산보다 월등히 높은 생산성을 보이고 있다. 즉 다른 집보다 새끼 한 마리를 더 낳는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유량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많다. 이처럼 생산성이 높은 데에는 꾸준히 종자개량을 해왔다는 것과 어려서부터 초식동물인 소의 생리에 맞도록 건초급여를 해 온 것이 주효했다. 김씨는 당진군에서 처음으로 건초사양을 시작한 농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른 농가들이 조사료만을 중점적으로 먹일때 그는 경운기를 끌고 다니며 풀을 베어다가 소에게 먹였다. 소는 풀을 먹어야 되새김질을 많이 하고 위의 용량이 커져 결과적으로 더 많이 먹을 수 있고 많은 우유를 생산해 낼것이기 때문이다. 조사료보다 건초를 더 많이 먹이는 방식으로 급여시스템을 바꾸자 건초의 소비가 급증해 결국 수입건초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비용이 곱으로 들어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씨는 또 자신의 소에서 선발한 우수 암소만 키워오는 등 자체적으로 종자개량을 해왔다. 좋은 정액만 찾을 것이 아니라 ‘좋은 정액’을 ‘우수한 암소’에 수정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자신만의 사양관리 방법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소에 대한 김씨 부부의 극성스러울 정도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들에게 무엇을 먹여야 좋을지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소는 자식보다도 우선이었던 존재였으니까 항상 무엇을 어떻게 먹이면 건강할 지 연구해 왔죠. 말 그대로 소에만 매달려 왔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는 소밖에 모른다고 서운해 할 정도로요.”
소만 바라보다보니 질병의 감지도 빠를 수밖에 없다. 어느 놈이 전날에 비해 우유를 적게 냈는지 사료를 얼마나 더 먹고 덜 먹었는지 항상 관찰하고 이상이 있으면 바로 수의사를 부른다. 그래서 질병이 더 이상 진행되기 전에 치료가 이뤄짐으로 심각한 질병으로 죽어나가는 소가 드물다.
“젖소는 아주 민감한 동물이예요. 정성을 들이는 만큼 우유로 답을 하죠. 그러니 세심하게 돌봐줘야 합니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지요”
부인 김숙희씨의 말이다. 낙농에 여자들이 할 일이 더 많을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성공비결 둘, 알뜰· 계획경영
모은만큼만 투자한다
이들 부부의 우사는 예상과 달리 매우 검소했다. 견고하게 지붕을 올린것도 아니었고 눈에 띌만한 첨단기계를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집안에 있는 발정감지기와 사료급여기가 유일하다시피했다. ‘모은만큼만 투자한다’는 이들 부부의 알뜰한 경영철학 때문이다. 이들은 한해동안 자신들이 벌어들인 수익의 범위안에서 필요한 시설들을 갖추어왔다. 10원을 벌면 10원어치의 우사를 만들고 그 이상을 벌면 조금 더 늘리는 식으로 무리한 투자를 지양해 왔다. 정부지원금이라고 해서 덥썩 물어다 쓴 적도 없었다. 그 결과 이들 부부는 빚이 한 푼도 없는 견실한 농가로 꼽히게 됐다.
“시작할때부터 조그맣게 시작했고 형식적이고 과다한 투자는 하지 않았습니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젖을 짤 수 있는데 굳이 외국의 선진농가에서 사용하는 기계라고 들여올 필요가 있나요? 물론 정부가 이런 형식적인 축산을 부채질한 측면도 있는데 이에 아랑곳 않고 우리식대로 해왔습니다.”
성공비결 셋, 개방적인 사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소에 대한 맞춤식 서비스, 김씨부부가 당진낙협의 컨설팅을 받은 이유다. 어느정도 낙농에 있어서는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들 부부가 굳이 컨설팅을 받을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분야와 그렇지 못한 분야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자신들은 소를 기르는 방법만 알 뿐 개별적인 소의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사양관리법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낙농은 과학적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예요. 과학적이라는 것은 곧 분업화로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질병관계는 수의사가, 소에 맞는 사양방법을 찾는 건 컨설턴트가 맡고 농가는 컨설팅 결과에 따라 사양을 해주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컨설팅을 받게됐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지존입성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보다 십수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꾸준한 노력이 빚어낸 결정체였다. 결혼 후 10여년간 친정나들이를 못했을 정도로 목장일에 매여있었던 고달픈 시절의 축적이고 IMF와 사료파동 등 온갖 역경을 헤쳐온 뒤에 얻은 월계관이다.
“돈많다고 웰빙하는건 아니죠.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는 삶이 바로 웰빙 아닐까요.?”
더 이상은 아무런 바람 없이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는 김씨 부부는 주저없이 자신들이 웰빙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