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무엇에 소질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이런 질문을 하는 부모들에게 조명호·김계환 부부(당진읍 원당리 청구아파트)는 “그렇다면 TV를 끄시라”고 권한다. 맹목적으로 TV 앞에만 앉아있는 아이, 하루종일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해 있는 아이에게서 그 만의 독특한 개성과 소질을 발견해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들 부부의 지론이다. 하루 서너개씩의 학원교육에 내맡겨진 아이들한테서도 마찬가지다.
환갑을 바라보는 초로의 이들 부부가 단호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믿음 때문이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특수목적고와 명문대학에 연년생인 두 딸을 잇따라 보낸 배경엔 TV 대신 책이 있었다. 그리고 퇴근 후의 모든 시간을 자녀들과 함께 하면서 독특한 방식으로 배움의 즐거움을 일깨워 준 아빠가 있었다.
일찌감치 세 딸 소질 계발한 아빠
석문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중인 조명호(58)씨와 유치원 교사 출신의 부인 김계환(57)씨에겐 세 딸이 있다. 큰 딸 아라씨(27)는 당진중학교를 나와 최고의 명문으로 불리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대를 거쳐 현재 같은 학교 대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둘째 아연(26)씨는 충남과학고등학교를 나온 뒤 카이스트를 거쳐 현재 서울대 의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셋째 아임(24)씨는 천안 복자여고를 나와 목원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두 언니를 제치고 다음달 결혼을 앞두고 있다. 첫째는 어학에, 둘째는 이과계통에 일찌감치 소질을 보였고 셋째는 공부보다는 노는것과 친구사귀는데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세 자녀의 소질은 타고난 것이었지만 그것을 일찍부터 알아채 그 소질을 계발하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선택하도록 유도한 것은 전적으로 부모가 한 일이었다. 특히 아빠 조명호씨의 ‘퇴근후 아이들과 함께하기’는 아빠가 할 수 있는 가정에서의 교육은 무엇인지, 그 교육이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TV는 정해진 시간동안만 보기
조씨의 자녀들은 책벌레였다. 네살이 채 안돼 글을 깨우칠 정도로 영특했는데 책을 가까이 한 것이 두뇌를 깨우는 데 적지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조씨는 믿고 있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된 데에는 여가시간엔 항상 책을 펼쳐들었던 아빠를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조씨는 집에 들어와서 9시뉴스 직전에 방영되는 드라마와 9시 뉴스를 보는 것이 TV시청의 전부였다. 시간으로 따지면 길어야 1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 TV를 켜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TV를 껐다. 그리고 나서는 예외 없이 책을 펼쳐들었다. 이 모습을 본 아이들이 아빠를 따라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걷지도 못하는 어린 자녀가 영문잡지인 타임지를 거꾸로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무척 재미있었다고 조씨는 회고한다.
“의도적으로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줬던 것은 아니예요. 저 자신이 TV를 별로 즐겨보질 않았기 때문에 남는 시간엔 사실 독서밖에 할일이 없었죠.”
“아이들이 글을 깨우치고 나서는 책읽는 속도가 저보다 훨씬 빠르더라구요. 30권짜리 책 한질을 불과 2~3일만에 다 읽어버리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죠.”
밖으로 나갈 생각도 않고 책 몇권, 과자 한봉지 들려주면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는 큰애와 둘째아이. 덕분에 박봉에 책값을 대는 일이 만만치 않았지만 바른말을 구사할 줄 아는 능력과 집중력, 이해력이 남다르게 우수한 것은 독서의 영향이었다.
배움은 즐거운 일, 칭찬은 듬뿍
조명호씨의 별명은 ‘퍼즐러’다. 학교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퍼즐이나 퀴즈같은 문제내기를 즐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의 답을 맞췄을 땐 칭찬을 듬뿍 해주고 맛있는 간식거리로 보상을 한다. ‘즐겁게 가르치고 배우기’를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보물찾기 게임으로 문장을 익히도록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구마 라는 단어를 쪽지에 써서 신발이나 그릇속에 넣어두고 찾아서 읽으면 다음 과제를 적은 보물을 찾도록 하는식이었죠. 최종 관문에 초코파이 같은 것을 놓아두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항상 또 하자고 난리였습니다.”
일찌감치 어학에 소질을 보인 큰딸과 달리 둘째는 수리에 밝았다. 그런 둘째에겐 동전퀴즈 같은 것을 자주 내 주었다. 기초적인 덧셈, 뺄셈 능력을 요하는 문제서부터 연립방정식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난해한 문제까지 가리지 않고 내주었다. 그러면 녀석은 아무리 힘든 문제일지라도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없었다. 온종일 끙끙거리며 정답을 찾아내고야 마는 그 끈기가 기특했다. 문제를 풀었을 땐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동원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글을 읽을 줄 알고 쓸 줄 알게 되면서부터 아이들에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바로 낙서였다. 무지공책을 사줘도 아이들은 꼭 안방 벽에 낙서를 하곤 했다. 점 하나 찍을 곳 없이 빽빽하게 해놓은 낙서를 아빠엄마는 애써 지우지도 않았고 혼을 내지도 않았다. 아이들의 키가 자라는 만큼씩만 밑에서부터 도배를 새로 해 나갔을 뿐이다.
“낙서해 놓은 것을 읽어보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아이들 생각이 얼만큼 자라나고 있는지 낙서를 보면 알 수가 있었죠.”
책읽는 것과 공부를 즐겼던 두 언니와 달리 막내는 놀기를 더 좋아했다. 맨날 책 보느라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언니들과는 반대로 막내는 마당에 나가 나무에 고무줄을 매어놓고 혼자서라도 놀았을 정도였다. 사교성이 좋아 친구들도 많고 노래와 춤 실력은 ‘가수 뺨칠’ 정도다. ‘비록 공부에서는 언니들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막내한테서는 인간냄새가 난다’고 부모는 말한다.
초등입학 전까지 아빠와 목욕 다녔던 딸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게 말은 쉽지만 퇴근 후 술자리의 빈도수가 활발한 사회활동의 척도로 여겨지는 세태속에서 ‘아빠를 가정으로!’는 분명 쉽지 않은 캠페인이다. 또 일찍 귀가한다고 해서 모든 아빠들이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과 노는 것을 즐기지 않는 아빠였다면, 술을 좋아했다면, 아마 조씨도 자녀들에게 그만큼의 공을 들이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씨가 항상 명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이들은 백지상태라는 것, 그리고 유년시절 그 백지를 채워주는 건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라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에게 참 자상한 아빠였어요. 낮동안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는건 제 몫이었고 저녁시간에 아이들을 돌보는 건 거의 아빠가 했죠. 그래서인지 딸들인데도 아빠와 더 가까워요. 애들이 대여섯살때까지도 아빠와 목욕을 다녔을 정도였으니까요.”
부인 김계환씨의 말이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김씨는 어린자녀를 둔 아빠들에게 초등학교 입학전에 많이 놀아줄 것을 당부한다.
“아이들은 6살 이전에 모든 지능이 발달한다고 해요. 돌이켜 생각하니 우리 아이들도 그 시기에 아빠가 많이 놀아주었던 것이 지능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셋 모두 고등학교때부터 집을 떠나 생활했지만 한번도 불안한 생각이 든 적이 없었죠.”
“자녀의 소질이 무엇인지 부모가 빨리 캐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남들이 한다고 똑같이 하는 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질 않고 되레 산만한 아이로 만들기 십상이죠. 학원을 서너곳씩 보낼것이 아니라 TV부터 꺼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금방 알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