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태윤이가 잘 커줘야 할텐데...”

김연수씨(신평면 거산리)는 오늘도 아들 태윤이에게 젖을 물리며 주문을 외듯 이렇게 말한다.

‘친구들한테 놀림 당하지 말고, 엄마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반듯하게 자라줘야 할텐데...’

김씨가 가장 걱정인 것은 바로 그것이다. 쥐꼬리만한 남편 월급에 의존해 세식구가 살아가는 빠듯한 살림이지만 돈 걱정은 나중일이고 그저 태윤이가 나쁜길로 빠지지 않고 바르게 자라주는 것, 바람은 오로지 그것뿐이다. 자식을 둔 부모 마음이야 김씨와 모두 한가지겠지만 유독 김씨의 바람이 간절한 데는 이유가 있다. 장애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녹록치 않음을 장애인인 김씨는 누구보다 뼈속깊이 느꼈기 때문이다. 멸시와 천대, 부모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 편견들이 아들에게까지 대물림될까봐 김씨는 벌써부터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 군내 한 사회단체가 마련한 동거부부 합동결혼식에서 김범수·김연수씨 부부는 동거 3년만에 정식으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날 김씨 부부는 다섯쌍 중 하객들의 이목을 가장 많이 받았다. 신부의 휠체어를 씩씩하게 밀며 입장하던 신랑, 그 찰나의 순간에도 신부의 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서른일곱의 신부 김연수씨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지체1급 장애인이다. 그리고 마흔 아홉의 신랑 김범수씨는 조금이라도 시끄러운 곳에서는 제대로 타인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는 4급 청각장애인이다. 이들은 3년전 당진산업이라는 장애인 고용업체 사장 사모님의 소개로 만나 동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1년전 보물과도 같은 아들 태윤이가 태어났다. 오십줄을 코앞에 두고 얻은 아들이 남편 김씨는 그렇게 예쁘고 고마울 수가 없다. 변변치 않은 살림에 벌써 태윤이를 위해 보험을 두 개나 들어뒀다. 태윤이를 안고 얼를때마다 남편 김씨는 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 “우리 똥강아지, 아무 걱정말고 똑똑하게만 자라라. 아빠가 다 해줄께..”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남편은 아들을 목사로 키우고 싶어 한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남편 김씨는 7남매 집안의 장남으로 중학교 1학년을 다니다 청각장애로 중퇴하고 그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서울에 있는 가방공장 등에서 일하다 96년도 당진으로 와 한보철강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1년만에 한보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공사장 잡부생활을 전전하다가 4년전 면천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 취업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지만 월급은 85만원. 그 수입으로 태윤이 양육비까지 감당하면서 세 식구가 살고 있다. 아파트 융자금도 앞으로 10년간 갚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아내 김씨는 태윤이를 맡길데만 있다면 나가서 한푼이라도 벌고 싶어한다.

아내 김씨는 충남 부여가 고향이다. 선천성 소아마비로 걷지 못해 학교는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어머니를 대신해 혼자 집에서 어린 동생들을 키워야 했고 그 와중에서도 배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독학으로 한글을 깨우쳤다. 김씨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조차도 버림을 받다시피 했다. 언니들 결혼식장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고 형부들은 결혼 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장애인인 처제의 존재를 알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소외의 아픔이 너무나 깊었기 때문일까. 김씨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무뚝뚝쟁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유독 아들 태윤이를 바라보는 눈길엔 사랑스러움이 그득하다. 태윤이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자신의 지난날, 따뜻한 한마디가 그토록 그리웠던 지난날의 목마름을 그는 아들 태윤이에게 쏟는 사랑으로 대신 보상받으려 하는 것 같다.

사실 남편은 초혼이 아니다. 지금의 부인을 만나기전 두 살 연상의 여인과 9년동안이나 살림을 했었다. 전 부인은 빚만 잔뜩 지고 가출을 했고 그 빚은 남편 김씨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아내 김씨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살림을 차렸고 차압이 들어와서야 비로소 전모를 알고 부랴부랴 자신이 처녀 때 모아둔 돈으로 전 부인의 빚잔치를 하는 기막힌 상황을 겪어야 했다. 만두공장에서, 버스정류장 매표소에서 어렵게 일해 모은 돈인데, 그런 사정을 남편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 사연을 꺼내기만 하면 말머리를 돌려버린다.

남편에게 서운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걷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정말 모르는 것인지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아파트의 4층으로 덜컥 이사를 오지 않나 처제들이 보내준다는 신혼여행도 마다하질 않나, 태윤이를 임신하고 만삭이 될 때까지 시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도 않았던 남편이었다. 10년 가까이 살맞대고 살던 여자로부터 빚만  떠 안은 속없는 남편이지만 아내 김씨는 인간적으로 측은할 뿐, 더 이상 원망스럽지 않다고 했다. 미우나 고우나 그는 자신의 휠체어를 밀어줄, 자신의 두 발이 되어 줄 동반자이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태윤이의 아빠이니까...

남편 김씨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주저없이 말한다. 물질적으로 좀 부족하긴 하지만 아들 태윤이의 ‘이쁜짓’에 하루 고단함이 눈녹듯 사라지는 일상이 더 바랄 것 없이 고맙다고 했다.

그래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내와 마찬가지로 태윤이가 엄마와 아빠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착하고 바르게 자라는 것, 그래서 엄마 아빠와 같이 소외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주고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 그것 뿐이다. 물론 그것은 김씨 부부의 노력만으론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해 더 이상 특별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회, 그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이들 부부에겐 바로 눈 앞에 닥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