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울 수 있을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하죠”

“나도 내 안에서 솟구치는 에너지의 원천을 모르겠어요. 저 스스로 놀랄 때도 많습니다.”

그녀의 특징은 다른 사람보다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다. 잠시도 앉아있지 않으며 동작은 ‘물찬제비’처럼 빠르고 민첩하다. 출입문을 어찌나 세차게 여닫는지 함께 있는 동안 몇번씩 가슴이 철렁여야 했다. 그러면서도 낯선땅 한국에, 그것도 서해 끝자락  당진에 와서 살면서 의사소통 문제로 온갖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 이주민들의 사연을 전할 때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이내 코끝이 빨개지면서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는 여린 심성을 갖고 있기도 했다.

에너지 넘치는 ‘미세스 양’

양태순씨(당진읍 대덕리, 64).

그는 당진도서관에서 지난 6개월 간 진행한 외국인 이주민을 위한 우리고장 전통체험 프로그램에서 통역 자원봉사를 맡은 주인공이다. 그리고 적십자 당진지구협의회에서 진행하는 외국인 근로자 쉼터에도 간혹 나가 봉사를 하고 있다.

‘60대 할머니 통역사’라는 타이틀은 좁은 지역사회에서 범상치 않은 이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를 통해 정작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였다.

자신을 항상 ‘미세스 양’이라고 칭하는 그는 환갑이 넘었어도 20대 못지않은 정열을 간직한 사람이었고, 오십대 중반을 넘어 뒤늦게 익힌 영어로 당진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외국인들을 위해 상담을 해주고 때론 그들의 부식거리를 챙겨주는 등 대모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뼘이라도 더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더 한국의 문화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금도 중국어, 일본어 회화책을 끼고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가난한 외국인 이주민들

고민 들어주는 맏언니

양씨와 친구가 되어 한국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고 때론 그의 집을 찾아와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고 가는 외국인들은 30여명 가까이 된다. 필리핀, 일본, 중국, 미국,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국적도 다양하다.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와 경제적인 문제로, 혹은 종교적인 배경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외국인 여성들이 양씨의 친구들이다.

“한국에 시집오는 여성들은 교육수준이 한결같이 높습니다. 돈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말도 안통하고 남편이 밖으로 내보내주지도 않아 오로지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삶을 사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죠. 창살없는 감옥이 따로 없습니다.”

어렵게 양씨와 연결이 되어 문화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게 된 외국인들은 이후에도 양씨를 찾아와 직장에서 있었던 억울한 사연이며 시어머니와의 관계, 의사소통이 안돼 겪는 어려움 같은 것들을 토로하며 위안을 얻고 간다. 수도관이 터졌다거나 한글컴퓨터를 사용하는 문제 등등 일상에서 겪는 애로점들을 말하고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그러면 양씨는 기꺼이 이들의 상담자가 되어주기도 하고 도우미가 되어주기도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필리핀 출신의 한 여성이야기인데 남편이 생활비를 벌어다 주지 않아 젖먹이 아기를 필리핀으로 보내고 자신은 월세 10만원짜리 방을 얻어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했어요. 아기를 필리핀으로 보내면서 어린아기가 비행기 소음 때문에 귀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울면서 걱정하던 모습을 보면서 저도 함께 울었었죠.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이 여성이 은행에 돈을 입금하는 방법을 몰라 어렵게 직장생활을 해서 모은 돈 70만원을 방안에 놔두었다가 그만 몽땅 도둑을 맞은 거예요. 당장 먹을 식량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는지... 급한대로 쌀과 김치를 챙겨주는 수 밖에 달리 도울 방법이 없었어요.”

오십줄 넘어 익힌 영어, 봉사의 도구돼

가톨릭 신자인 양씨가 아무런 댓가도 주어지지 않는 이런 일들을 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신앙의 힘이 큰 듯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에 배운 영어가 지금 그가 하는 봉사의 도구가 된 것이다.

양씨가 영어를 배우게 된 배경은 그리 유별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영문 타이핑을 배웠고 학교 졸업 후에는 군속에서 3년간 타이핑 하는 업무를 보았다고 한다. 그때 쓰기를 익힌 것이다. 그리고 조카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던 외국인 강사가 한국의 농촌을 방문하고 싶다며 양씨집을 찾아온 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누게 됐고 그 외국인 강사는 1년간 양씨집에서 주말을 함께 보내며 생활을 했다고 한다. 영어를 배워보라는 그의 권유에 따라 양씨는 당진에 있는 외국어 학원에 등록해 2년간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양씨는 영어로 의사소통하는데 문제가 없게 되었다. 그때가 56세였다.

“이웃에 외국인 있다면

한번이라도 돌아봐주세요”

“제발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이웃에 외국인이 있으면 한번이라도 돌아봐 달라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는데 한국에 와서 다른 집을 가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거예요. 이웃집에서조차 불러주지 않기 때문이죠. 말이 안통하면 어떻습니까. 불러다 차 한잔 내줄 수 있고 따뜻한 눈길 한번 줄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인간적으로 관계를 맺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들도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됩니다. 세계화니 국제화니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이웃의 외국인에게 잘해주면 그게  외교인거예요.”

10여년 가까이 외국인 이주민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 온 양씨는 이미 그 분야에선 박사가 된 것 같았다. 최근 급격히 늘어난 외국인 여성들의 한국정착을 돕기위한 자치단체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현재 베트남 여성들 같은 경우 영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미흡하게나마 진행되는 외국인 대상의 문화 프로그램들에도 참여를 못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당진군이나 기관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남편이 내보내주지 않으면 절대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한국어 강좌를 한다면 남편도 함께 참석하도록 배려를 해주는 게 좋지요.”

양씨의 핸드폰엔 매일 아침 문자가 찍힌다고 한다. 문장의 절반은 한국어, 절반은 영어다. 이 여성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렇게 아침 문자를 통해 양씨에게 인사를 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양씨는 이렇게 작은 일상에서 이주민들의 친구가 되어있다.

“남편(노인회 당진군지회 유익동회장)에게 감사해요. 집에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말은 통하지 않아도 ‘예스’해주고 웃어주고 공감해 줍니다. 그런 배려가 없었다면 이 일들을 해오지 못했을 거예요”

20년간 암투병을 해오고 있는 남편은 얼마전 수술 바로 다음날 노인회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책을 전달하는 행사를 갖고 왔다고 한다. 그 사명감에 감탄을 했다는 양씨는 남편과 열일곱살이라는 나이차이도 극복하고 늘 신혼같이 살고 있다고 자랑했다.

“외국인들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기를 바라고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예요. 다만 그들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고 비록 작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때 인간은 행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나서는 것이지요. 사실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큰 것 없습니다. 단지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 뿐이지요.”

양씨는 누군가 자신을 도와 외국인 이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외국인 친구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 혼자로는 너무 벅찰 때가 많다며...